서평-「피동형 기자들」
상태바
서평-「피동형 기자들」
  • 승인 2012.02.16 1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세영

홍세영

mjmedi@http://


객관 보도의 적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고발한다

 

아이들이 듣던 인터넷강좌가 있었다. 유독 한 강좌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선생님이 즐겨 쓰던 표현 때문이다. 굳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분은 30분 강의동안 일 분에 한두 번 꼴로 ‘되어집니다’를 외쳤다.

저자의 말처럼 능동형은 행동 주체를 주어로 분명히 내세우기 때문에 의미와 초점이 뚜렷하고 문장에 힘이 있다. 반면에 피동형 표현은 에둘러 완곡하게 말하고자 할 때 주로 쓰며 정치, 외교계에서 특히 빈번하게 사용한다. 피동형은 책임의 소재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문장이라는 해석에 수긍이 간다.

우리말은 능동형 중심 언어이다. 그래서 피동형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는 피동형의 원조로 알려진 영어권에서도 수동태보다는 능동태 표현을 쓰도록 글쓰기 지도를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 교육의 대가인 윌리엄 진서(이한중 옮김, 「글쓰기 생각쓰기」, 돌베개, 2007)도 명료함과 활력 면에서 능동태와 수동태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만큼 크다고 했다. 개화기 신문을 보면 피동형 표현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용어보다 문법이 사고방식에 더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주체가 먼저 나오느냐 객체가 먼저 나오느냐에 따라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자동사를 쓰느냐 타동사를 쓰느냐에 따라 현실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요 일간지 기사를 분석하여 통계를 냈다. 그에 따르면 매일의 국어교과서인 신문의 언어 표현은 주어가 없는 피동형과 익명 표현으로 넘쳐난다. 수동태의 원조인 미국과 일본조차 따라잡았다. 방송과 인터넷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언어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매너모드는 ‘해제되고’, 메일은 ‘발송되었으며’, 잘 될 것으로 ‘판단되고’, 점포는 ‘오픈될’ 예정이다. 눈이 올 것으로 ‘예상되고’, 나쁜 습관은 ‘고쳐져야’ 하며, 노력은 ‘기대되게’ 마련이다. 설상가상 점입가경으로 이중피동형이 ‘남용되어지는’ 경우가 ‘확인되어지니’ 이러한 표현으로 인해 우리의 언어생활이 심각하게 ‘잠식되어질’ 것이 ‘예상되어진다’.

학위논문을 쓸 때 교수님께서 ‘생각된다’를 ‘생각한다’로 모두 바꾸라고 지적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글을 쓸 때 피동형을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실로 뿌리 뽑기 쉽지 않음을 매번 느낀다.

어린 아이들이 주변의 대화를 통해 말을 배우듯 우리는 다양한 언론매체를 접하면서 언어를 학습한다. 정작 국어를 훼손시키는 이들은 말 줄여 쓰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아닌 것 같다. (값 1만 3천원)

홍 세 영 / 경희대학교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