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21) -「儒胥必知」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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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21) -「儒胥必知」①
  • 승인 2012.01.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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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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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親患에 쓸 全牛膏

 

오늘은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봄직한 의약관련서 하나를 소개한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사대부나 관아의 아전, 상민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참조해야 할 일반 법률상식집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먼저 凡例를 보면 “무릇 문자의 체는 각기 다르다. 문장을 배우는 사람은 문장의 문체를 숭상하고 公令을 공부하는 사람은 공령의 문체를 익히며, 서리의 일을 배우는 사람은 서리의 문체를 배운다. 이른바 문장학은 序ㆍ記ㆍ跋ㆍ雜著 등의 문체를 말하고 공령학은 詩ㆍ賦ㆍ表ㆍ策ㆍ疑ㆍ義 등의 문체를 말하며……” 운운하였다.
또 이어 “서리학은 단지 문서나 장부를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上言, 所志, 議送 같은 문체를 말하니 모두 서리들이 알아야 한다. 이는 유독 서리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런 문체는 儒者와 서리에게 가장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이 책을 儒胥必知라 이름 한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이 책은 철종 재위 연간에 처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저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내용 가운데 정조 9년(1785)에 간행된 「大典通編」의 조문이 인용됨으로써 상한연대는 그 이상 소급하기 어려우며, 현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武橋甲辰本이 헌종10년(1844)으로 간주하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초간본의 출현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책의 내용은 어느 판본이나 대동소이하나 출판처를 달리하여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엽까지 여러 차례 重刊을 거듭함으로써 대중적인 선호도가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소 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에게 걱정이 더해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더더욱 農牛가 농민의 생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였던 지라 다음과 같은 내용이 올라 있다. 이른바 ‘折脚所志’라 이름 붙은 것인데, 소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 올리는 일종의 청원서투이다.

내용인즉 “……저는 땔감 장사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번 엄동대한에 땔감을 실어 나르던 소가 갑자기 빙판길에서 넘어져서 마침내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우러러 호소하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잘 헤아리신 후에 특별히 처분을 내려주소서” 云云 하였다.

이에 대해 관가의 처분이라 할 수 있는 題辭에는 “가죽은 벗겨서 관에 바치고 고기는 팔아 송아지를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마치 솔로몬의 해법과 같은 판결을 내린다. 당시 解牛 즉 밀도살에 대해 관에서 엄격하게 통제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기르던 소가 다쳤어도 임의로 도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를 청원서를 통해 소청한 즉, 세금에 상당하는 가죽을 관아에 납부하게 하고 고기는 팔아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제 방안을 마련하게 한 것이다.

뒷장에는 이보다도 더 절실한 경우가 실려 있다. ‘爲親患用全牛膏所志’인데 부모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소를 잡아 牛黃을 취하여 쓰게 해달라는 청원이다.

“어버이의 병환이 1달 전부터 갑자기 깊어져서 의원에게 물어보니 風虛라고 진단하였습니다. 의원은 반드시 전우고를 복용해야만 나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牛禁, 酒禁, 松禁 三禁은 실로 나라에서 금하는 일[法禁]이라 감히 이것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저 혼자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하였고, 이어 “그 처지를 굽어 살펴 勿禁帖을 발급해 주시어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해주소서……”하여 도살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대한 판관의 처분은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길 때 아전들은 침탈하지 말 것”이라 적혀 있어 당시 소를 도살할 때 관아에 가죽을 바쳐야 했고 처지가 딱한 이 경우 그마저도 면제해 주어 효도를 推奬하고자 하였다. 쇠고기 가격과 무관하게 효도의 의미가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설을 앞둔 모든 이의 심정일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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