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19)-「農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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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19)-「農書」③
  • 승인 2012.01.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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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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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과 경험 속에서 찾은 재배 지식

 

이 책에 담겨진 내용 가운데 계절변화에 따른 약초재배 지식의 변용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節序편에는 늙고 경험 많은 농사꾼[老農]이라는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저자의 농사지식을 피력하고 있다.

“계절이 찾아오는 차례는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다[節序者有進有退], 草木과 鳥獸 가운데 다른 것보다 먼저 계절의 기운을 얻어 나오는 것이 있으니 菖蒲가 나오기 시작하면 初耕을 해주고 살구꽃[杏花]이 피면 再耕하고 꾀꼬리[倉庚]가 울기 시작하면 播種하고 매미[蜩蟬]가 울면 김매기[耘耔]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농사의 시점을 정하는 일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선험적인 지식과 조짐을 파악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아가 “피를 심을 때는 2월 상순을 고집하지 말고 버드나무 가지가 움트는 것을 보라. 기장을 심을 때는 3월 상순을 고집하지 말고 복숭아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라. 콩을 심을 때는 4월 상순을 고집하지 말고 대추나무 이파리가 나기를 기다리라. 보리를 심는 자는 한가위를 기다리지 말고 오동나무 잎이 날리는지 바라보라”고 하였다.

이것들은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 나아가 세심한 자연관찰 속에서 얻어지는 혜안이 없이는 깨닫기 어려운 것으로 오늘날 발달된 과학지식만으로 일거에 파악하기 어려운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보여준다.

또 經驗편에는 춘분일에 9가지 곡식의 종자를 베주머니에 싸서 토굴을 파고 묻어두면 15일이 지난 뒤 싹이 트는데, 가장 많이 자란 것이 그해에 가장 적합한 품종이라고 하여 한해의 풍흉을 결정할 수 있는 종자 선택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아울러 12월[臘月]에 3번 큰 눈이 내리고 나서 땅을 3자 깊이로 파서 종자를 넣어두면 씨앗에 틀어박혀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모두 죽고 蟲害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종자의 저온저장법과 관련해 오늘날에도 재고해 봄직한 이야기이다.

나아가 便宜편에서는 제방과 보를 막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灌漑방법에 대해서 깊이가 얕아 물이 고이지 않는 것은 깊게 파서 물을 가두고 버려두고 쓰이지 않는 것은 가난한 백성들로 하여금 빈 땅을 일구어 다시 쓸모 있는 전답을 만들어 이용하도록 하고 공연히 세금을 부과하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고 적극적인 권농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禁制편에는 재미난 공동경작법이 제안되어 있다. 소는 농사의 기본[牛者, 農之本]이 되므로 5집을 한데 묶어[五家作統] 1統 안에 각기 소 1마리를 둔다. 이렇게 하면 서로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만 만일 넉넉지 못하여 소를 기르기 어려우면 해당 관서에서 소 값을 쌀로 대주고 농사를 지은 후에 농사가 끝나면 소를 되팔아 환납하게 하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도 역시 간악한 인간 부류들에 의해 악용당하는 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듯, 일부 모리배들이 거짓 민가[虛戶]를 끼어 넣어 統을 이룬 다음, 관으로부터 환곡을 받아내어 이득을 취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또 관아의 관리들이 범죄를 단속하고 엄격한 관리를 시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끝으로 進書文의 말미에는 “땔나무꾼의 하찮은 말이라 물리치지 말고, 특별히 채택하여 쓰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라고 적어 그의 충심을 전하고 있다. 말미에 ‘己未二月 日 臣南極曄’이라 밝혔으니 이 모두가 정조 23년인 1799년에 이루어진 일로 「제중신편」의 완성과 함께 정조 임금 치세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피날레였던 셈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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