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6) - 제3회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
상태바
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6) - 제3회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
  • 승인 2012.01.01 1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훈

이상훈

mjmedi@http://


모든 만남은 소중한 인연이자 세계화의 싹

2011년 12월 17일∼19일까지 제3회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 연례회의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김남일 학장님, 정창현 부학장님과 함께 참석하였다.

먼저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Global University Network of Traditional Medicine, 약칭 GUNTM)에 대하여 소개하면, 각국 전통의학분야의 명문대학들이 중심이 되어 전통의학의 교육, 연구 및 임상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창립을 제안하고 각국의 명문 전통의학대학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구성된 공동협의체이다.

제1회 서울대회는 2009년 5월 6일∼8일까지 경희대학교 및 COEX에서 개최되어, 초대 회장으로 당시 경희대 한의과대학장이었던 최승훈 교수님을 선출하고, 각 대학의 전통의학의 교육, 연구 및 임상분야의 현황을 소개하고, 각 분야에서 대학 간 협력을 수행할 조직으로서 7개 대학의 대표들로 구성된 4개(교육, 연구, 임상, 정보)의 분과위원회를 조직하고,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의 정관을 작성하고 창립을 선언하였다.

창립 회원 대학교는 다음과 같다.
▲경희대학교-Kyung Hee University(한국)
▲북경중의약대학-Beijing University of Chinese Medicine(중국)
▲광주중의약대학-Guangzhou Universit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중국)
▲중국의약대학-China Medical University (대만)
▲홍콩침례대학교-Hong Kong Baptist University(홍콩)
▲메이지국제의료대학-Meiji University of Integrative Medicine(일본)
▲RMIT University(호주)

제2회 북경대회는 2010년 10월 14일∼16일까지 북경중의약대학이 주관하여 각 대학의 교육, 연구, 임상분야의 특징 및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발표하였는데, 경희대학교에서는 최승훈 학장님, 김호철 부학장님(연구), 백유상 교수님(교육), 필자(임상)가 참석 및 분야별 발표를 하였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교육분야의 국제협력을 본 주제로 토의하여, 회원 대학 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GUEST(GUNTM UNIVERSITY EXCHANGE STUDENT TRAINING) 북경협정을 체결하였다. 금번 제3회 대회는 지난 12월 17일∼19일까지 대만 타이중(大中)시에 있는 중국의약대학에서 주관하였다. 이번 대회의 주요행사는 다국가 침구 임상 연구를 위한 프로토콜 토의와 전통의학 EBM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이었다.

먼저, 다국가 침구 임상 연구 프로토콜로서 대만 연구진이 제안한 헤로인 중독에 대한 methadone 치료의 부가적 치료로서 침술의 임상효능 평가와, 일본 연구진이 제안한 슬관절 통증에 대한 피내침의 효과 연구를 함께 검토하였다.

우선 헤로인 중독 침 치료 연구는 모든 대상자에게 methadone 치료를 실시하며, 여기에 부가적으로 전침치료를 하는 군, 전기 자극은 없이 동일경혈에 최소 침 자극만 하는 군, 침 치료는 전혀 없이 methadone만 투약하는 군으로 분류하여 치료하는 프로토콜이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프로토콜 자체는 의미 있고 좋지만, 한국의 경우 마약중독자를 침 임상연구 대상자로 모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 염려가 있고, 최소 침 자극군의 명칭을 이 프로토콜에서는 sham 치료군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였다.

중국에서는 득기를 중시하고, 대체로 강한 침 자극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거의 최소 침 자극에 해당하는 약한 자극이 실제 임상에서 일반적인 침 치료서 활용되는 경우가 있듯이 국가별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국가 침 임상 연구시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였다.

일본측 제안인 슬관절 통증에 대한 피내 침 연구는 placebo 피내 침을 이용한 대조군 연구로서 대상자 모집은 수월할 것으로 생각되며, 단점으로는 피내 침의 특성상 상당수의 환자들이 꽂혀진 피내 침을 집에서 떼어 어떤 침인지 확인할 가능성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말하였다.

10여년 이상 침 임상연구를 수행한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침 임상연구는 하면 할수록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임상연구의 Gold Standard라고 하는 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가 과연 침 연구에서도 Gold Standard인가 하는 점은 이제 보다 더 진지하게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10여년 동안 한의학계도 논문의 양적인 성장은 많이 있었고, 그 중 Systematic Review(SR)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SR의 결론은 기존 임상연구 자체의 질적 저하 및 양적 저하로서 침 치료의 임상효과는 결론을 내릴 수 없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전반적 학계의 분위기가 촉박한 시간 안에 급하게 양적인 성장을 재촉하는 것은 그 배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실제 학문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인스턴트 논문들만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무엇이 학문적 발전 및 실제 환자들의 질병 치유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연구 방법론의 개발부터 힘을 모으고,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와 같은 국제협력을 통해 건강한 Slow Food를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이번 GUNTM 회의는 필자에게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개인적 이야기이지만 ‘세계 속으로’라는 본 칼럼과도 관련이 있어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내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은 예과 1학년 겨울방학이던 1990년 2월 바로 이 대만의 중국의약대학(당시는 중국의약학원)으로의 자매학교 방문이었다. 당시 1주일 정도 있으면서 세미나도 참석하고, 주변의 관광지도 잠시 둘러보았다. 타이중시에서 숙박은 당시 중국의약대학의 한 학생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였다.

2003년 제12차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 때 대만 타이베이를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타이중시와 중국의약대학은 이번이 거의 22년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고, 대회 이틀째인 12월 18일 필자는 ‘Acupuncture in Korea’라는 제목으로 25분간 근거중심의학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중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2년 전 중국의약대학에서 기념촬영 했던 나의 사진들과 당시 홈스테이를 했던 친구의 자필 서명이 담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싶으니, 꼭 연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므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발표가 끝나자 대만의 한 교수님께서 다가오시며, 그 친구는 같은 병원 동료로서 바로 연락을 했으니 저녁 만찬 때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막상 오래전 친구를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1학년 때 며칠 함께 한 추억뿐인데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고, 막상 만나면 서먹하지나 않을까, 사진 속 얼굴보다 얼마나 변했을까 라는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튼 시간이 되어 친구는 저녁 식사장소에 나타났고, 옛 사진과 비교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서먹하면 어쩌나 했던 염려는 기우였고 그저 반가웠다.

친구 역시 “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論語 學而篇의 구절처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느새 처음 만났던 때의 나이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만나 온 친구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친구는 당시에는 중의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서의사(西醫師) 면허를 취득하여 신경과를 전공하였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작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모교 신경과에서 재직 중이었다.

대학교 1학년 새내기에서 이제는 모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소소한 가족들 이야기도 하고, 각 나라의 전통의학의 현황 및 발전에 대한 좀 거창한 얘기까지 나누며, 이제 서로 연락처를 알게 되었으니,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짧고 놀라운 두 번째 만남을 마쳤다.

세계를 다니다보면, 이번만큼 극적이지는 않아도 세상은 생각보다 참 좁고 지구촌 한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특히, 동양의학이라는 주제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정말로 한두 단계만 거치면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다.

우주라는 거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교차되는 모든 만남은 철학과 종교적 의미를 넘어 정말 소중한 것이다. 어떠한 작은 만남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품고 산다면, 그 관계 한올한올이 개인을, 집단을, 나아가 우주를 좀 더 따뜻하고 풍성하게 하는 인연이 될 것이다. 한의학의 세계화도 결국 이러한 마음과 인연들을 쌓아간다면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상훈 / 경희대 한의대 침구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