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18)-「農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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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18)-「農書」②
  • 승인 2011.12.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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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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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草木을 관찰하고 노래한 歌客

 

南極曄(1736∼1804)은 담양출신의 문인으로 「愛景堂十二月歌」,「鄕飮酒禮歌」 등 국문시가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남극엽의 자는 壽汝, 호는 愛景堂으로, 南道興과 咸豊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기골이 빼어나고 턱밑에 검은 사마귀가 있어 비범한 기색이 있었다고 한다. 10세에 希齋 李鳳瑞에게 글을 배웠으며, 증조부 夢龜의 저술인 「省齋行錄」 6권을 간행했다. 1798년에는 御定 「大學衍義」를 교정하는 일에 참여했고, 1800년에는 校正儒生으로 규장각에 들어갔다 했으니, 이 책도 이 무렵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시문집인 「愛景言行錄」은 원래 10권10책이었으나, 현재 5책(3·5·8·9·10권)만 전하며, 여기에 62세인 1797년에 향음주례에 참여해 지은 가사 「향음주례가」, 68세인 1803년에 조상들의 충효사실을 찬양한 「충효가」, 연시조 「목주잡가」 등이 실려 있다.

또 그의 아들인 秋潭 南碩夏(1773∼1853) 역시 歌詞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일찍부터 여러 차례 鄕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京鄕의 선비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英志菴이라는 서재를 짓고 평생 후학을 기르는 일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秋潭逸稿」가 있는데, 「草堂春睡曲」·「思親曲」·「白髮歌」·「願遊歌」 등의 대표작을 남겨 부자가 모두 호남의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가운데 몇 가지만 사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農書簿冊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하늘이 내린 생명을 땅에서 기른다는 사실은 고금에 다름이 없지만, 기후가 일정하지 않고 풍토가 고르지 않아 농사짓는 방법에 한가지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오늘날 이상기후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돌이켜 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그가 務農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노인을 편히 쉬게 하고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한 事親이라는 유가적 덕목을 실천하는 행위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老老休養之風, 親親惇恤之誼)

나아가 그는 농사의 3대 요소를 土宜와 水功, 그리고 農器로 지목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농기를 가장 중요하게 보아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農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토질의 적합성보다는 적절한 水利가 중요하고, 수리보다는 農器의 개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 대목은 맹자가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말한 논법을 잘 응용한 설명방식이다.(圡宜莫不善於水공 , 水공莫不利於農器, 三不可廢一)

그는 또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고 도랑을 내서 물길을 대고 때때로 흙을 갈아주고 번갈아 심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요, 때맞춰 비가 내리길 기다리지만 말고 마땅히 인력으로 먼저 해야 할 일이지 오곡에 허물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였다.

또 南北東西에 따라 風氣가 다르고 山野原濕으로 土性에 구별이 있다고 말하고서 저자가 살고 있는 秋城(전남 潭陽의 옛 지명)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수원이 부족하여 읍내에 작은 개울만 관통하므로 30리 밖 秋月山 아래 보를 막고 수원을 가두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토질과 풍기를 자세히 논변하여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목도한 사례를 일일이 밝혔다.

나아가 이를 미루어 살피면 다른 지역의 경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求農의 良策으로 제안하였다. 그는 국왕이 下問한 農政策에 충직한 신하의 자세로 임하였으며, 고식적으로 농서에 얽매이지 않고 경험이 많은 老農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다음 호에 節序와 經驗을 통해 18세기 호남지역에서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고 농서를 지어 널리 소개한 저자 남극엽의 본초학자로서 면모를 재조명해 보기로 하자.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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