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보험한약,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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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보험한약, 무엇이 문제인가
  • 승인 2011.11.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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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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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한의사가 쓰는 한약으로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보험한약제제이다. 그러나 1994년 27%에 달했던 한방건강보험 중 약제비 점유율은 이제 1% 남짓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첩약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보험의 비중도 50% 미만으로 떨어져 한의사들은 약 환자를 만나기가 힘들어졌다고들 한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러 각도로 살펴 정확히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험급여대상인 56개 처방은 다빈도 처방 10개 정도를 제외하면 많이 사용되지 않는 생소한 처방들이 많다. 방제학 전공인 필자는 이 처방들의 선정과정에 대해 오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1984년 청주 청원지역의 시범사업 당시 그 지역의 24개 한의원에 사용처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여 결정한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국가보험체계에 들어가면서 대상처방들을 이런 방식으로 선정하였다니 사실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또한 용량에 있어서는 1일 2첩, 1돈 4g으로 환산하여 1일 원약재 총량이 100g을 넘는 처방들도 있다. 이를 첩약으로 전탕할 때는 용매인 물의 양만 조절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제제로 만들 때에는 약재량에 따라 엑스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1일 복용량이 50g을 넘는 불합리한 일이 생기게 된다. 일본의료용 제제와 비교하면 3~10배 이상의 복용량이다.

게다가 한약을 제제로 만드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소규모로 약을 전탕하는 한의원과는 달리 제약회사에서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환류추출을 하게 된다. 환류추출의 경우 전통적 추출법보다 일반적으로 높은 수율과 지표성분 함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원약재량을 사용하더라도 더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제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보험한약의 1일 복용량을 정한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첩약전탕액과 보험한약의 차이점은 끓인 후 건조시킨 엑스에 부형제를 넣어서 산제로 만든 것이니 차이가 있다면 부형제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약제제의 롤모델로 생각하는 일본의료용 한방약들의 건조엑스와 부형제 비율을 살펴보면 약 100 : 90정도이다.

반면 우리나라 혼합단미엑스산의 경우에는 건조엑스와 부형제가 100 : 43정도로 일본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낮다. 즉 부형제 때문에 보험한약제제들이 효과가 낮거나 복용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2007년 보험약제 부형제 감소를 위해 주성분 함량(건조엑스량)으로 고시를 개정하고 개선된 제품들이 생산된 바 있지만 실제 한약제제의 질 향상이나 사용량 확대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혼합단미엑스산이라는 제형이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경희대 한의대에서 1980년대 초부터 동일처방을 개별한약재를 따로 전탕한 후 혼합하여 만든 시료와 복합 전탕하여 만든 시료로 비교실험을 하도록 한 후 10여 년간 진행된 약 50여건의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개별한약재 전탕 후 혼합이나 처방을 복합하여 전탕한 것이나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 이 데이터들이 보험한약이 도입될 시기부터 개별 엑스산제를 사용하게 되는 중요한 근거로 쓰였다. 또한 올해 황련해독탕 혼합단미엑스산과 복합추출물의 다성분프로파일을 비교한 결과 0.92(0.90이상이면 동등한 것으로 봄)의 동등성 상관계수를 보여 동등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부형제나 혼합단미엑스산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문제는 보험한약제제들이 제제로서 정상적인 의약품 허가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약이며,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한약은 도입부터 제품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나 고려 없이 정책적으로 우선 시작된 약들이다. 56개 처방 자체의 선정에도 문제가 있으며 처방량에도 문제가 있다. 식약청 기준으로는 10종 한약서에 근거가 없는 몇몇 처방들은 허가를 내주는 것도 곤란하다. 원료관리 품질관리 제조관리 등 의약품으로서 제약회사에서 지켜야 하는 규정들에 대한 세부지침도 미흡하다.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제대로 된 보험한약제제들을 만들어 한약을 보다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보험한약의 백년대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현재 국민들이 요구하는 일반적인 한의원의 임상 스펙트럼과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처방들을 다시 논의하여, 제제로 만들 경우 적절한 용량과 용법을 확인하여, 의약품으로서 제대로 된 품질관리가 되어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자. 또한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높일 수 있는 제형으로 제약회사에서 전문의약품으로 허가받도록 하여 일정기준 이상의 제제를 급여약제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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