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09)「隨聞輒錄」
상태바
고의서산책(509)「隨聞輒錄」
  • 승인 2011.10.20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contributor@http://


본대로 들은 대로, 經驗한 처방

 

「수문첩록」표지 본문

1책으로 된 필사본 경험방서인 이 책에는 「隨聞輒錄」이란 서명이 붙어 있고, 이를 통해 저자가 평소에 주변에서 보고 들었거나 자주 사용하였던 經驗方 위주로 기록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표지에는 丙午季春에 隨草하였다고 쓰여 있으나 안타깝게도 작성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현재 한의고전명저총서 DB에서 전문을 검색해 볼 수 있다.

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의 廣濟單方과 후반부의 萬病回春經驗方이 그것이다. 전편을 이루는 광제단방은 帶下症, 挾疾, 腹瘧, 霍亂, 耳聤, 腰痛, 犯房卽發傷寒, 眼疾, 小兒食傷, 濕腫, 乳道不足, 斑疹, 小兒頭瘡, 小兒吐瀉, 小兒腹瘧, 肢節痛, 痢疾, 根腫, 浮脹의 질환에 단방 위주의 치료를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중간 중간 민초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로 附記한 곳도 여러 군데 나타난다. 대하증 치료를 예로 들면, “烏魿의 머리를 불로 태워 가루로 만들어 술과 함께 따뜻하게 복용하면 낫는다.”라고 설명하였는데, 烏魿의 옆줄 여백에 ‘감물치’라고 병기해 놓아 한자말이나 약명을 잘 모르는 대중들을 의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후편의 ‘만병회춘경험방’에서는 보다 다양한 질환들에 대한 치료법이 제시되어 있다. ‘萬病回春經驗方’이라는 제목으로 인하여 조선 후기에 널리 애용되었던 明나라 龔廷賢 원작의 명저 「萬病回春」과의 관련성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호간에 직접적인 관련성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이 만병회춘경험방편에는 별도의 목록이 존재하는데, 총 100여 가지의 질환이 수록되어 있다. 또 이것과는 별도로 治痘妙方을 별문으로 두었다. 목록의 앞에 ‘婦人門’이라고 표방되어 있으나 수록된 모든 처방이 부인과질환만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부인과 소아를 치료하기 위한 경험방이 다수 실려 있는 것을 보아 부인소아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재된 부인과 관련 질환으로는 子懸, 胎動, 難産, 胞衣不下, 乳腫, 産後泄瀉, 産婦死腹中兒不出, 血崩이 있으며, 소아과 관련 질환으로는 小兒食傷, 痢疾, 疳疾, 驚風, 風丹 등이 있다. 여기 만병회춘경험방에서 제시하고 있는 처방들 역시 대개 일반 민가에서 사용하기에 간편한 방법들 위주로 꾸며져 있어 애초 저술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자궁 내에서 태아가 비정상적인 위치에 자리 잡은 子懸의 치료에 소똥으로 胸膈에 뜸을 뜨면 태아가 저절로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기술하였다. 또 銀杏을 전탕하여 복용하되, 만약 구하기 어려우면 대안으로 은행나무 가지라도 달여 복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쉽사리 약재를 구하기 어려운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자상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에 독립적으로 기술되고 있는 治痘妙方은 앞에서 실린 단방이나 경험방의 경우에 비해 보다 자세하다. 예컨대, 痘瘡의 다양한 양상에 따른 처방이 비교적 상세하게 제시된다. 두창의 色, 통증의 지속, 두창 증상의 順症과 逆症, 貫膿의 與否 등에 따라 구분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두창에 대한 약간의 醫論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말기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몸이 아파도 치료할 약재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常民들에게 있어서 주변에서 손쉽게 구하여 이용할 수 있는 단방과 자신이 스스로 효험을 보아 징험해 본 경험방은 어찌 보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명의의 명성보다도 더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낱같은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안 상 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