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지금 한약제제가 답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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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지금 한약제제가 답인 이유
  • 승인 2011.10.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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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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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원광대 약대 한약학과 교수)

많은 분들이 지금 한약의 위기는 의사들의 한약 폄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한약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의사들은 그걸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약은 더 이상 신비로운 효과로 환자들에게 어필할 수는 없다. 정보가 다 공개되고, 환자가 자기병을 잘 알고 있는 사회에서는 환자들이 자신이 먹고 있는 약에 뭐가 들었는지, 무슨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알고 싶어 한다. 한의사가 맥을 잡고 정성스럽게 달여 주는 약을 그냥 믿고 먹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첫 번째, 예전처럼 한약재에 정성을 들여 채취하거나 재배할 수 없는 체계에서 사용하는 한약재의 신뢰도는 한의사가 보증할 수 없고, 이를 담보하는 현대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이 한약재 제조업소와 GMP제도, 관리한약사와 각종검사를 거친 규격품 한약재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두 번째, 정말 오랜 기간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추천하는 검증된 한의사가 아니라면 한약을 지어먹기 꺼리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효과가 그만큼 있다면 100만원이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지만, 효과가 없다면 10만원도 비싼 것이다. 환자들의 비싸다는 말은 한의사의 능력과 한약의 효능을 확신할 수 없다는 표현이다. 또한 안전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과학적 근거 없이 한약에 대해 국민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일조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 환자들은 탕약을 달이는 수고를 무릅쓰거나 쓰고 불편한 탕약을 복용하는 것보다는 먹기 편하고 보관과 휴대가 편한 제형을 선호한다. 그러나 현 약사법에는 “한약”이 “…주로 원형대로 건조·절단 또는 정제된 생약”이라는, 한약재와 같은 수준으로 정의되어 있다.

정의상 한약재가 곧 한약이라면 환자에게 한약(한약재)을 조제하여 첩약으로 주는 것은 한약을 처방하고 직접 조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환자들의 필요를 위해 한의사가 달여 주거나, 환제 산제 과립제 연고제 등을 만들어주는 것은 약사법상 근거가 모호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량으로 하게 되면 제조행위라는 의혹을 받게 된다. 또 환자들은 한의원에서 자가전탕, 제제화 하는 것보다 GMP시설을 갖춘 공장에서 품질관리를 하여 제조된 것을 더 신뢰한다. 따라서 브랜드 건기식을 구입하여 복용하는 것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약의 위기는 원료의 문제, 안전성·유효성의 문제, 제형과 제조과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한약제제이다. 한약과 한약제제는 다르다.

<현대의 의약품의 조건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제시하는 의약품의 품목허가 및 신고를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허가한 GMP시설에서 생산하여 안전성, 유효성, 안정성, 균질성을 확보한 제품이어야 한다.>

한약제제는 이를 충족할 수 있지만, 첩약이나 조제한약은 이를 충족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첩약을 없애거나 표준화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첩약은 원료관리를 잘 하되 한의학의 특성을 살려 환자의 특수상황에 맞출 수 있는 유연한 영역으로 남겨놓고, 우리는 한약제제를 의약품답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한약제제를 첩약의 형태만을 변경한 약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한약제제는 보편성과 대중성을 갖춘 약으로, 자료를 만들어 의약품의 조건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첩약의 저렴한 유사품으로 안전성·유효성 자료제출이 면제된 한약제제가 아니라 의약품의 조건을 갖춘, 제대로 된 한약제제들을 하나씩 개별 한방건강보험등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가 있다.

감히 단언하건대 한의사가 한약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약제제를 의약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김 윤 경
원광대 약대 한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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