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한의학교육의 개혁은 토론문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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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한의학교육의 개혁은 토론문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 승인 2011.10.0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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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효

김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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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예과생과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의학윤리인가요, 의료윤리인가요?” 당시 수업내용 속에선 의료윤리가 적절한 표현이란 점에 공감했지만, 학교에서 정해준(?) 교과목 명칭은 의학윤리였다. 다시 그 대화를 생각해 본다. 지금 한의학교육의 목표는 한의학자를 양성하는 것일까, 아니면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일까?

20세기 대학의 위상은 상아탑이란 표현처럼 맑고 순수한 지성인, 한마디로 학자를 키워내는 요람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대학의 모습은 학생들의 생존전략이자 취업의 관문이 되어버렸고,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혹독한 구조조정의 평가를 받으면서 대학간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와 같은 현상은 한의과대학을 포함한 의학교육기관도 마찬가지이며, 이 같은 변화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필자는 한의학교육의 목표와 방향이 학자를 위한 인재 양성인지 임상을 위한 의료인 양성인지를 두고 진지한 고민과 판단을 못한 채 교육의 혼선과 시행착오를 적지 않게 경험했었는데, 서두에서 언급한 학생과의 대화내용에 한의학교육의 목표와 방향의 실마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0년도 한의과대학 졸업생 중에서 97%가 임상의를 진로로 선택했다는 현실을 이제 직시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더욱이 한의과대학의 공교육에 대한 모자람과 갈증으로 학생들 스스로 사교육을 선택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비밀스럽지도 않다.

이와 달리 대학원 진학 및 학문에 관련한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인 현실은 대학이 학문의 요람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며, 나아가 우리 한의학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모습과 그 위상변화는 더 이상 minor report로만 부쳐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대학은 학문의 요람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육성하는 기능을 잃지 말아야 하며, 한의사를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 못지않게 한의학을 보호 육성하는 주춧돌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학의 인재 양성과 임상을 위한 의료인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고민하는 속에서 한의학교육의 개혁이 이뤄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최근 전국한의과대학생연합은 “2011 전국한의과대학 교육문제 토론회”를 주최하여 한의과대학의 교육개혁이란 주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이 주제의 무게만큼이나 토론회에는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및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등을 대표한 패널이 참여하였다.

한편 한의학교육의 주체인 한의과대학측 패널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쉽지만, 지금 한의과대학에서는 한의학교육 전반에 걸친 개혁과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끊임없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 속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한의학교육에 대한 문제를 한의계 내 수요자(학생) 및 공급자(대학)를 포함해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있지만, 서로 간의 소통과 토론이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역할과 지위가 다르다고 하지만, 지금 한의학교육의 문제는 너무나 큰 공통분모가 아닐까 한다. 각자가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방식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한의학 교육과 평가시스템에서는 단순하게 적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간극은 커지고, ‘내 탓, 네 탓’이 아닌 ‘네 탓, 내 탓’이 되는 논쟁만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한의계에 속한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양성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유기적으로 정체성(整體性)을 이룰 때 한의학이라는 큰 특징을 형성하는 것이라 믿는다. 물론 지나친 다양성의 폐해도 있지만,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해 범한의계 차원에서 한의학교육과 미래 한의학을 위한 건전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형성되어가는 것이 필요하며, 이제 그런 현상이 보였다.

다만 한의학교육에 관련하여 서로를 경쟁(competition)의 대상 또는 위계질서(hierarchy)의 관계로 보지 말고 각자의 장점끼리 어울려 배려하는 토론을 통해 한의학교육의 개혁에 필요한 한의계의 동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 재 효
원광대 한의대 경혈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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