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병의원 임상시험에서의 고려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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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의원 임상시험에서의 고려사항
  • 승인 2011.09.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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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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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약 효과’ (placebo effect)

임상의학분야 최고의 저널로 꼽히는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1년 7월호에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천식환자를 대상으로 albuterol이라는 기관지 확장 흡입제 치료군과 가짜 흡입제 치료군, 가짜침 치료군,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는 군으로 나누어 천식에 대한 치료효과를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연구결과 비교적 객관적인 효능판정 방법에 해당하는 폐기능 검사 중 최대 호기량에서 albuterol 치료군은 20% 최대 호기량을 개선시킨 반면, 나머지 세 군에서는 약 7% 정도만의 개선이 관찰되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지만, 비교적 주관적인 효능판정 방법에 해당하는 환자가 스스로 작성하는 치료 후 개선정도에서는 상황이 달라져서, albuterol 치료군이 50% 정도의 개선효과를 나타냈고, 가짜 흡입제 치료군과 가짜침 치료군에서도 각기 45%와 46%의 개선효과를 나타낸 반면,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는 군은 20% 정도의 개선효과만을 나타냈다.

이를 통해 첫째 가짜약 및 가짜침의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고, 둘째 비교적 환자가 작성하는 주관적 평가에 의지하는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한의학 임상연구에서 진짜약과 진짜침의 효능을 검증하기 위해 적절한 임상시험설계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임상시험에서 가짜약이 도입된 것은 1950년 감기 치료제로서의 항히스타민제 무작위 배정 비교임상연구부터다. 이후 1964년 로버트 스턴바흐 박사가 실험으로 ‘가짜약 효과’를 증명했는데, 가짜약을 받은 환자들의 3분의 1 가량에서 다양한 질병에 대해 만족스런 증세의 호전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 같은 ‘가짜약 효과’는 수술에서도 나타나는데, 1950년대에는 외과 의사들이 심한 가슴통증을 느끼는 협심증을 치료할 때 약물보다는 수술을 선호했고, 당시 보고에 따르면 이 수술을 받은 환자의 4분의 3정도에서 증세가 호전되었는데 단순히 피부를 절개하는 가짜수술을 받은 환자들도 2분의 1가량은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짜약 효과’는 알약 주사 수술의 순으로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의학 임상연구에서 사용되는 한약, 침, 약침 등에서 ‘가짜약 효과’ 역시 이와 유사하여 침이나 전기침, 약침 등의 임상시험에서는 ‘가짜약 효과’가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우선 한약 임상시험에서 위약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무색 무취 무미한 양약과 달리 한약은 고유의 색깔 향기 맛을 가지고 있어 이 세 가지 구성요소에서 진짜약과 가짜약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 임상시험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고 감초나 진피와 같이 비교적 완만한 한약을 가짜약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가짜약은 어떠한 약리성분도 포함해서는 안된다’는 전제에 위배되므로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 한약에 대한 가짜약 제조는 각기 하나하나의 단미한약 혹은 복합처방에 대해 가장 근접한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색깔은 인공색소를, 향기는 아로마 향료를, 맛은 인공조미료를 사용해 각각을 적절히 구성하여 완성된 3~4가지의 샘플들에 대한 2~3명의 눈가림 테스트를 거쳐 가장 유사한 조합 1가지를 가짜약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추천된다. 하지만 이는 일반 한방병의원에서는 불가능하므로 한방제약회사에 문의하면 제약회사별로 몇 가지 위약을 제조하여 공급해 주므로 이를 활용하면 된다.

다음으로 침과 전기침 약침 임상시험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짜약 효과’가 커지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임상시험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원래 경혈부위가 아닌 곳에 침을 놓거나, 경혈점에 침을 놓고 약하게 자극하거나 염전보사와 같은 자극을 시행하지 않는 등의 가짜침 치료 역시 피부를 뚫고 침이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생각보다 큰 ‘가짜약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외국의 경우 침에 대한 경험이 극히 적어서 특수하게 고안된 가짜침, 즉 침 끝이 피부를 뚫었는지 뚫지 않았는지를 알 수 없게 고안된 가짜침의 사용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침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이마저도 피험자가 쉽게 알아차리기 쉽다.

실제로 이러한 가짜침 치료군만을 대조군으로 사용했던 임상시험 상당수가 ‘효능 없음’이란 결과를 냈고, 이는 진짜침이 가짜침의 ‘가짜약 효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적절한 임상시험 설계를 못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침 관련 임상시험에서 무처치 대조군이라는 비교군을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앞의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에서 사용한 네 번째 군인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는 군이 여기에 해당한다. 즉 진짜침 치료군 대 무처치 대조군, 혹은 진짜침 치료군 대 가짜침 치료군 대 무처치 대조군과 같은 방법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가짜약 효과’는 천식환자 임상연구에서처럼 임상진료에도 적극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가짜약 효과’와 같은 반응을 환자에게서 잘 이끌어내는 의사들은 대개 낙천적이고 희망에 차 있다고 하니 이왕이면 환자의 삶의 의지, 희망을 줄 수 있는 활기차고 즐거운 진료를 하는 것이 본인뿐 아니라 치료효과를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병 철
경희대한의대 부속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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