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韓藥 여행스케치(73) - 「열하일기」(연암 박지원 저) 속의 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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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韓藥 여행스케치(73) - 「열하일기」(연암 박지원 저) 속의 한약
  • 승인 2011.09.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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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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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환, 오미자, 인삼, 빈랑, 여지 등 언급

연암 박지원은 18세기에 송곳처럼 솟아난 조선의 실학자이자 문필가다. 44세이던 1780년(정조 4년), 삼종 형인 영조의 부마 금성위 박명원(朴明元)이 청나라 건륭제 고종의 칠순을 축하하는 진하사절로 선발되었고, 박명원의 권유가 있어 그는 군관의 직함으로 사절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5월 25일에 한양을 떠난 사절단은 6월 24일에 압록강을 건너 8월 1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으며, 다시 9월 17일 베이징을 출발하여 10월 27일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이후 박지원은 3년간 공을 들여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의 일정을 기재한 기행문학 작품인 「열하일기」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열하일기를 보니 곳곳에 한약이 등장하는데 특히 청심환이 자주 나온다.

연암이 한 노인께 책을 며칠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별로 없습니다만 책 목록은 있는데 소일거리로 보시려면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영감(연암)께서 지금 바로 돌아가셔서 진짜 청심환과 조선 부채 중에서 잘 만든 것을 골라 처음 만나는 정표로 주신다면 그때 책 목록을 빌려드리는 조건입니다.”
노인은 대가로 청심환을 요구한다. (7월 3일)

중국 땅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오는 첫 번째 청심환 이야기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 청심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열하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청심환을 얻기 위한 가짜 참외 도둑도 등장한다. 한 늙은이가 연암을 찾아와 얘기한다.
“이 늙은이가 길가에서 참외를 팔아 하루하루 먹고사는데, 아까 당신네 조선 사람 삼 사십명이 지나가다가 처음엔 돈을 내고 사서 먹더니 떠날 땐 참외를 하나씩 들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버렸습니다.” (7월 13일)

그리고 이 늙은이는 청심환을 달라고 졸랐다. 청심환을 얻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베이징의 유리창 책방에서의 일이다. 하인이 그 집의 안주인의 청이라면서 청심환을 가지고 온 게 있으면 한두 개 얻었으면 하고 전언을 한다. 연암은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훗날 다시 올 때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였다. (8월 3일)

시습재에 가서 악기를 구경하는데 웬 청년이 급히 들어오더니 눈을 부라리며 연암이 들고 있던 작은 거문고를 빼앗는다. 동행한 왕민호는 몹시 겁을 내며 연암에게 나가자고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별안간 웃으면서 연암을 붙들더니 청심환을 달라고 한다. (8월 14일)

청심환을 얻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이다. 기분이 상한 연암은 허리 전대에 청심환이 몇 알 있었지만 그의 행동이 하도 무례하고 괘씸하여 한 알도 주기 싫었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북구(古北口)의 한 절에 들렸는데 난간 밑에 오미자 두 섬쯤을 말리려고 펴 놓은 게 보였다. 연암은 아무런 생각 없이 오미자를 두어 알 집어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중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연암에게 호통을 쳤다. 그래서 마부 춘택이 화를 내며 중에게로 다가가 꾸짖었다.  “날이 더워 찬물 생각이 나신 우리 영감께서 이 가득 널린 오미자 중에서 한두 알을 씹어 침이 나오게 해 갈증을 풀려고 하셨다. 그런데 너같이 양심 없는 중놈이 어디 있느냐. 이 무례한 놈아. 이 무슨 버릇없는 짓이냐?” (8월 17일)

춘택이 중의 뺨을 한 대치고 조선말로 쌍욕을 해대고 다른 중에게는 또 한 주먹으로 때려 눕혔다.
“너의 어른이 공짜로 오미자를 가져갔다. 그런데 도리어 네놈을 시켜 사발만 한 주먹으로 되갚다니, 이게 무슨 도리냐.”
쓰러졌던 중이 말하니 춘택은 더욱 성을 내면서 욕을 해댄다. “그게 무슨 공짜냐? 그걸 한 말을 드셨냐, 한 되를 드셨냐? 그까짓 눈곱만 한 작은 알갱이 때문에 우리 어르신의 높은 인격을 깎아내린단 말이냐?”
중들은 조금 뒤 웃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산사 열매 두 개를 바치면서 청심환을 달라고 한다. 애당초 이렇게 소란을 떤 건 결국 청심환을 얻어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심보는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연암은 청심환 한 알을 건넸다고 한다.
“공짜로 오미자를 가져갔다는 욕을 먹었으니,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연암은 이처럼 자기를 탓했다. 연암은 베이징을 향하던 중에도 마부 창대가 통증이 심해 돈 2백 닢과 청심환 다섯 알을 주어 나귀를 빌리기도 하고(8월 7일), 청심환 한 알을 소주와 바꾸어 마시기도 했다는 일화가 이어진다. (8월 8일)

인삼(한국 금산)
청심환 말고도 인삼 그리고 열대과일인 빈랑과 여지도 열하일기 속에 나온다.

6월 24일 압록강을 출발하는 현장모습이다. ‘의주 부윤이 벌써 막을 치고 기다렸다. 사람과 말을 사열하고 이어 금지된 물품을 수색했다. 주요 물품으로는 황금, 진주, 인삼, 수달 가죽과 사신들이 노자 이외의 한도를 넘은 은자(銀子)였다.’

인삼이 출국 때 심사하는 주요 물품임을 알 수 있다. 외국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 금지된 물품이 발견되면 다음과 같은 벌을 받는다. 첫 번째 문에서 걸린 자는 아주 큰 곤장을 때리는 한편 그 물품을 몰수한다. 두 번째 문에서 걸리면 귀양을 보내고 마지막 문에서는 목을 베어 걸어 뭇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한다.

‘길에서 서로 팔짱을 끼고 가는 두 사람을 만났는데 생김새가 모두 수려하기에 혹시 글을 하는 이들인가 싶어 앞으로 다가가 읍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팔을 풀고 아주 공손히 답례를 하고 나서 곧 약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빈랑 두 개를 사 칼로 반씩 자르더니 내게 한쪽을 권하고 자기네도 입에 넣고 씹는다.’ (7월 11일)

이처럼 열대과일 빈랑도 「연암일기」에 등장한다.

환관이 와서 모난 주석 항아리 하나를 내렸다. 누런 비단으로 만든 마개를 열어 보니 빛이 누렇고도 약간 붉은 것이 술 같았다.
“이건 정말 황봉주야.”
서장관이 말했다. 맛이 달고 향내가 풍기지만 술기운은 전혀 없었다. 다 따르자 여지 여남은 개가 떠오른다.
“여지로 빚은 술이야”
“참 좋은 술이구려.”
“어, 취한다, 취해”
그날 밤, 기풍액을 찾아가 한잔 따라 보였더니 술이 아니라 여지즙이라고 알려주었다. 껄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8월 13일)

「동의보감」 이과편에도 나오는 열대과일인 여지의 주스를 마시고서 다들 취했다고 착각한 재미있는 얘기다.

<참고문헌>
「열하일기」 박지원 저, 고미숙 옮김, 그린비(2008)
「열하일기」 박지원 저, 김문수 옮김, 돋을새김(2008)
「열하일기」 박지원 저, 김혈조 옮김, 돌베개(2009)

글·사진 / 박종철
국립순천대학교 한의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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