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 제13회 국제동아시아과학사회의(ICHSEA)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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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 제13회 국제동아시아과학사회의(ICHSEA)에 다녀와서
  • 승인 2011.09.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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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김동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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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들의 열정, 그리고 韓醫學에 대한 자부심
"'과학과 문화유산' 주제의 동질감 넘친 회의"

30℃를 훌쩍 넘어버린 온도, 찝찝하다 못해 갑갑하기까지 한 엄청난 습도. 제13회 국제동아시아과학사회의가 열린 합비(Hefei, 合肥)의 첫인상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버스를 탄 채 마음 한구석에는 생애 처음으로 하게 될 영어발표에 대한 부담감과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덤덤한 마음이 공존하면서 눈으로는 합비 시내를 둘러보았다. 개발과 미개발, 질서와 무질서가 혼재된 도시 합비는 500만이 사는 도시답게 조금은 빽빽해 보였다.

제13회 국제동아시아 과학 사회의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뜨거운 열정으로 임하는 史學者들

학회가 진행되는 5일간 학자들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상대의 연구에 대해 공감하고 크게 관심을 보이는 학자는 물론 발표자의 내용과 상반된 주장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어 토론은 더욱 흥미진진하였다.
특히 醫史學 분야에서는 “中醫學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과학적이고 실질적으로 규명되는 中醫學을 왜 ‘유산’으로 지정하려 하는가”라는 주장의 대립이 기억에 남는다. ‘中醫學’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 토론은 결국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제발표가 있었다. 필자는 대부분 의학관련 세션에 참석했었는데, 상한론, 사상의학, 중서의회통, 황제내경 등에 대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조선후기 한의학에 대한 발표, 환자 중심으로 조선시대 의학사를 바라본 연구발표,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한국의 관점 등에 대한 발표는 우리 세션에서 진행된 발표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한의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욱 관심 있게 들었다.

또 천문세션에 잠시 참석했었는데 발표자로 오셨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과거에 천문과 의학이 모두 중요한 학문분야였던 만큼 상호간의 연관성 역시 깊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각종 연구결과를 들으면서 역사학에 대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사학이 단순히 과거를 밝혀내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특히 한 연사의 발표를 들으면서 “시대는 바뀌고 사람은 바뀌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고민을 한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몸에 대해, 병의 치료에 대해 고민해왔던 것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선배들의 모습은 동일한 실수를 번복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긴 역사의 흐름 속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감까지 주었다. ‘역사란 어쩌면 한 번도 뵌 적 없는 선생님, 친구를 찾는 학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전통의학 세션의 발표장 모습
韓醫學에 대한 많은 관심

화요일 오후, 우리 세션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30∼40여명쯤 되는 학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5명의 발표자가 자기 순서에 맞추어서 발표를 하였다. 구체적인 주제는 서로 달랐지만 ‘한국의 한의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많은 학자들이 우리의 발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한의학’이라는 특수한 주제에 관심을 가질 학자가 얼마나 될까 했던 내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이라고 하면 중의학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한의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한국에 보존된 1차 사료에 관심을 갖는 학자, 한중일 삼국간의 의학교류에 관심을 갖는 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한의학을 알고 싶어 했다.

특히 중의학과는 다른 ‘한국의 전통의학’ 자체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학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 ‘사회주의 과정으로 인해 단일화된 체계로 편집된 중의학’과 달리 ‘과거 한의학이 가지고 있던 특징을 지금까지 잘 보존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의학’을 설명하는 일은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진수가 한국에 살아있음을 이야기하는 자부심마저 느끼게 했다.

세션 발표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한의학에서 병과 인체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학부생 시절만 해도 병과 인체에 대해 醫家마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해석한다는 사실이 ‘그래서 뭐가 정답이냐’라는 질문과 연결되면서 나 스스로를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번 학회에서 각국에서 온 학자들이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시기의 의학을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연과 인간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한의학이기에 그들이 살았던 장소, 그들이 살았던 시기에 따라 인체와 병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인식한 서로 다른 인식체계를 단일화 시키는 것 자체가 한의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이기에 가장 한의학다운 한의학을 배울 수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공부할거리가 참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던 기회였다.

김동률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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