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김정희-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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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김정희-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 승인 2011.09.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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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근

신홍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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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大成)의 세 가지 조건 모두 갖춘 최고의 학자

 

 

저자 유홍준은 서울대미학과, 홍대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동양철학과(박사)를 마쳤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전국적인 답사여행의 붐을 일으켰다.

‘천하에 추사(秋史)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추사의 일면은 알지만 전체는 모르고, 겉만 보며 깊은 곳까지는 다 살피지 못함을 말한다. 추사는 일반에 알려진 바, 조선 최고의 명필 서예가를 넘어 시와 문장의 대가였고 경학, 고증학, 금석학, 불교와 선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조선을 넘어 청나라의 학자, 예술가들과 널리 교류했고, 그의 시와 문은 당시 중국 최고 학예인들의 극찬을 받은 국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추사 연구의 권위자인 후지츠카 치카시는 “박제가의 제자로서 조선 역사상 보기 드문 영재인 완당(阮堂) 김정희가 연경(북경)에 가서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 최고의 두 경사를 만나고, 여러 명현들과 왕래하여 학문의 핵심을 잡아 귀국하자 조선의 학계는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빠른 진전을 보여 500년 내로 보지 못했던 진전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고 또한 “추사는 청조학(淸朝學) 연구의 제일인자”라고 하였다.

동지부사 부친을 따라 연경에 간 추사(당시 25세)는 당대 최고의 경사(經師)로 꼽히는 옹방강(78세)과 완원(47세)을 만나 사제의(師弟儀)를 맺고 그 외 많은 학인들과도 교류했다. 귀국해서도 만년에 이르기까지 시문과 학예, 서책 등을 주고받으며 평생을 이어갔다.

경주김씨 명문가의 후손으로 고조부는 영의정에 이르고 증조부는 영조의 사위인 부마에 봉해지고 부친도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추사도 가문의 후광과 본인의 능력이 더해 규장각 대교,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 등의 벼슬을 했다. 55세 때는 당쟁과 참소로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나 제주도에 9년, 함경도 북청에 1년간 귀양살이를 하는 고초를 겪었다.

아픔과 고난 속에서 오히려 정신적, 학문적으로 진일보하게 되었으니 천고명품 추사체는 제주 귀양이후 완성되었다.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도 제주 귀양 시절 온갖 정성을 다해 연경에서 여러 귀한 책들을 수차례 구해준 제자 이상적의 의리에 고마움을 표하며 그려준 그림이다.

“비록 내 글씨는 보잘 것이 없더라도, 나는 70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추사의 천품이나 스승, 학연을 부러워하기보다 추사의 이 말을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다.

대성(大成)의 세 가지 조건은 천품, 스승, 항심(恒心)이다. 추사는 셋을 완벽히 갖추었다. 다행인 것은 선현들의 부언(附言). 앞의 둘을 갖추고도 항심이 모자라면 그 끝이 허망하지만, 둘이 없어도 항심만 제대로 이어가면 둔재(鈍才), 독학(獨學)의 필부(匹夫)라도 소성(小成)은 능히 성취함이다.

춥고, 외롭고, 억울(抑鬱) 답답함을 이기는 것도 역시 항심이다. 늘 그러하길! <값 2만 5천원>

신홍근 / HB 공부연구소, 평화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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