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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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승인 2011.08.2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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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洪均

金洪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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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로 지정된 조선 막사발의 역사적 조명

정동주 지음/한길아트
같은 차를 마시더라도 다기(茶器)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차 그릇의 종류야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데 그 가운데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이도차완’ 또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이도다완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토의 다이도쿠샤(大德寺)에 모셔지고 전시관을 지어놓을 만큼 ‘미의 종교’ 또는 ‘천하대명물’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다도(茶道)의 나라 일본에서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사발이다. 왜 그럴까?

1592년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었다고 할 정도로 왜군이 가장 먼저 일본으로 보낸 전리품은 웅천 두동리 등 진주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 일대의 도자기들이었다. 당시 전리품을 받고 기꺼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조선 사발을 최고의 차도구로 쳤다. 그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국보가 된 도자기 ‘기좌이몽 이도(喜左衛門 井戶)’가 그들 무장들에게 감동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다이묘(大名)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을 초청하는 차회(茶會)에서 조선 사발로 차를 마셨고, 이러한 조선 사발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사발의 출처를 찾았다. 재료의 측면에서 백자 재료인 태토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진주부 지방 가마에서 구운 것이고, 언어의 측면에서 ‘이도’라는 말이 우리말의 ‘새미골’과 같은 의미이고, 왜군의 사천지역의 전투기록으로 보아 경남 진주와 가까운 사천만 근처의 큰 샘이 있는 사남지역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그 용도를 승려사기장이 절간에서 쓰기 위해 만든 발우(鉢盂; 바리떼)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후로도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이 그토록 감탄해마지 않는 ‘기좌이몽’을 저자가 보여주는 사진으로나마 살피고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색조를 보면,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소박한 조선의 초가집 같은 누런색을 띠면서, 모양새는 사발의 아래굽이 좁으면서도 약간 높아 선비의 기상을 연상시키며, 전체적인 윤곽은 윗부분에서 중간까지 선이 부드럽게 안쪽으로 내려오다가 몸체의 아랫부분에서 굽 부분까지 급격하게 깎아내려 살아 숨 쉬는 역동감이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쪽으로 돌려봐도 좌우비대칭으로 어울리는 절묘한 자연미가 있으며, 사기장의 물레질로 생겼을 손자국 등이 손 안에 드는 감칠맛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래 굽 언저리의 올록볼록하게 생긴 이슬 모양의 유약이 맺힌 응결방울은 일본 사무라이들이 칼 손잡이에 감았던 바다표범 가죽의 손맛과 비슷하다고 한다.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엮은 세밀한 기록들이 돋보이며, 상세한 설명과 사진들이 눈앞에서 보듯 크고 선명하게 담겨 있어, 지루한 장마와 무더운 여름 날씨에 좋은 청량제가 될 만큼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값 1만 8천원>

金洪均 /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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