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한의학연구원 새로운 연구방향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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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한의학연구원 새로운 연구방향 모색해야
  • 승인 2011.08.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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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승

장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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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부터 96년까지 한약분쟁으로 한의계가 가장 크게 얻은 가시적 성과를 꼽는다면 필자는 공중보건한의사제도와 한국한의학연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공중보건한의사제도는 한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고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체계적인 한의학 연구 개발의 초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그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의학연구원의 앞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94년에 설립되었지만 97년에야 지금의 연구원 형태로 승격되었고 2000년 이후 그 외형은 상당히 커졌지만 연구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는 한의계 안팎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는 강소형 연구조직 개편안을 골자로 한 ‘연구기관 발전 로드맵’에 대한 1차 자문·점검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한의학연구원은 수리연구소·김치연구소·안전성평가연구소와 함께 강소형 조직의 방향 정립을 다시 해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정부의 강소형 연구조직 개편안이 무조건 옳은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연구원이 앞으로 정체성과 발전 방향을 새롭게 정해야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의학연구원의 현 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상체질 진단툴’같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의학 관련 연구는 대부분 초기 상태이므로 무분별한 비판보다는 애정 어린 비판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사상체질 진단툴은 안면, 체형, 음성, 설명의 4단계를 통해 체질을 구분한다고 한다. 이 체질 진단툴은 대체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단순하게 “체질을 기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획기적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지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체질을 구분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체질에 따른 생리와 병리를 이해하고 특정 약물을 쓰기 위해서 체질을 구분한다. 어떤 체질에 맞는 만병통치약이 있지 않는 한 체질구분은 임상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물론 체질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치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체가 확실할 때 이야기다. 혈액형은 A, B, AB, O형으로 나눠져 있지만 실제 필요한 것은 수혈을 하기 위해서다. 체질은 4가지로(또는 그 이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치료를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단계 중 하나일 뿐이므로 기본적으로 실체감이 떨어진다. 치료에 대한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체질에 대한 실체를 구현하기 어려워지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사상체질 진단툴’은 연구를 위한 연구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의학 관련 수많은 연구들이 이런 실체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연구자들이 한의학적인 실체가 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당장 모든 사람이 다들 인정할만한 실체를 찾기 어려운 것이 한의계의 현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실체를 구현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할 때이다. 사상체질 진단툴을 만들기 이전에 체형, 안면형태에 대한 패턴의 연구가 더 이뤄진다면 이것이 좀 더 가치 있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좀 더 현실적인 연구과제를 개발하고 결과물을 내놓는 한의학연구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장욱승 / 경기 용정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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