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교과 통합과 한의사 국가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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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교과 통합과 한의사 국가고시
  • 승인 2011.08.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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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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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 통합출제, 원안대로 해야”

근래 수년간 한의사 국가고시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논의가 있었다. 초기의 논의에서는 뚜렷한 몇 가지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과목별 출제를 지양하고 통합 출제로 방향을 잡은 것이나 오직 필기시험뿐이었던 지금까지의 국가고시에 실기평가를 도입한 것, 그리고 과거 제외되었던 기초과목의 내용을 임상과목과 융합하여 출제에 반영하기로 한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논의가 계속되면서 본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어정쩡한 과도기적 방안들이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는 느낌이다. 실기평가는 사실상 언제 시행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며 통합 출제의 원칙도 훼손되어 이제는 침구학뿐만 아니라 본초학, 재활의학, 장부형상진단학, 체액분석학 등의 과목명이 ‘한의학’(총론 및 각론)이란 과목명과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국가고시제도의 개정 자체를 기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잘 알려진 바이지만, 통합 출제의 원칙이 애초에 왜 제시되었는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간 한의계에서는 이른바 ‘교실’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교육계획을 세워왔으며, 한의사 국가고시 출제도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교실 간에 적극적인 정보교환이 없다 보니 연관된 내용에 대해서도 서로 동떨어진 내용을 출제하는 수가 많았고 심지어는 동일한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는 것조차 피할 수 없었다.

한의사면허를 받으면 당장 환자를 보아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눈앞에 환자는 와 있는데, 내과에서 배운 내용대로 해야 하는지 침구과에서 배운 내용대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방제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대로 해야 하는지…. 결국 각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 통합 출제가 필요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통합 출제의 효과는 단순히 시험 방식의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의학을 보다 일관된 체계로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과목의 벽을 허물고 통합 강의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미 여러 가지 어려움이 드러나고 있다. 한방진단학과 한방병리학과 같이 대등한 시수(時數)로 일대일 통합한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원전학이나 침구학과 같이 다양한 과목에 일대다 형식으로 분산하여 강의를 재편성한 경우에는 교수와 학생 양측에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예전처럼 과목별로 나누어 강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학생 측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명목상의 통합이 되었을 뿐 내용상의 통합(유기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했으나 그 동안 해결하지 않고 미루어 두었던 문제가 졸업 전에, 보다 일찍 학생들에게 노출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해결책은 각 교과의 내용이 일관되게 연결되도록 조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침구와 탕약을 하나의 책에 부문별로 녹아내었던 좥동의보감좦의 전통이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기 어려운 모습이라 한다. 비록 미흡하지만 허준 선생이 400년 전에 했던 일을 왜 우리는 아직도 미루고 있는가.

거창하게 말했지만 국가고시의 통합 출제가 이루어지고 과목간의 일관성이 확보된다면 수험생으로서는 이처럼 좋은 일이 없다. 하나만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되니. 굳이 ‘질 높은 보건의료 서비스’ ‘한의학의 학문적 발전’ 이런 주제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가고시의 통합 출제, 원안대로 되어야 마땅하다.

김기왕 / 부산대 한의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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