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94) - 康洪大 (1867∼?), 金炳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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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94) - 康洪大 (1867∼?), 金炳觀 (미상)
  • 승인 2011.08.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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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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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濟院에 근무하면서 원장까지 지낸 한의사

 

일제시대 사진엽서에 나오는 대한의원 전경, 조선총독부 의원이라고 불렀다.

대한제국기는 한의학의 변혁기이다. 특히 일제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크나큰 좌절을 경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康洪大, 金炳觀은 이 시기 궁중에서 御醫로 생활하면서 이러한 변혁의 시기를 몸소 체험하였다.

 

康洪大는 1898년 太醫院의 典醫로 侍從院侍從의 대우를 받았고, 1901년 內部廣濟院長이 되었으며, 1902년에는 秘書院丞, 1903년에는 전의와 中樞院議官을 거쳐 다시 내부광제원장이 되었다가 그해 물러났다. 1906년에는 전의로서 태극사등훈장을 받았고, 1907년 陸軍三等軍醫長에 임명되었다. 여기에서 그의 이력 가운데 ‘내부관제원장’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내부광제원이라는 기관은 內部病院 廣濟院 등으로 불리운 국립의료기관으로서, 1906년 일제에 의해 예고도 없이 서양의학 시험을 치러서 여기에서 진료했던 한의사들을 축출한 병원이었다. 1907년 7월 24일 丁未七條約이 체결되면서 한의사들이 행정부에서 완전히 축출되었고, 9월 3일 군대 해산령과 함께 한의사 출신 軍醫들이 완전히 면직되고 말았던 그 병원이 아니던가!

廣濟院은 1899년 대한제국에 의해 설립된 內部病院이 1900년 廣濟院이라고 개칭된 병원이었다. 廣濟院은 1907년에 官立醫學校와 附屬病院 대한적십자병원의 기관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大韓醫院이라는 병원으로 바뀌게 된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이 大韓醫院을 시작으로 잡아 2007년도에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 바가 있다.

金炳觀은 廣濟院의 한의사를 역임한 인물로 1904년 典醫補로 있으면서 장용준 홍철보 등과 함께 고종에게 한의과대학의 설립을 주청하여 同濟醫學校의 개교를 가능하게 했던 인물이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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