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92) - 池錫永 (1855∼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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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92) - 池錫永 (1855∼1935)
  • 승인 2011.07.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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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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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사를 가르친 한의사

 

種痘法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池錫永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이후 한의사로만 활동한 인물이다. 1876년에는 김기수를 따라 일본에 갔던 朴永善으로부터 「種痘龜鑑」을 전수받아서 種痘硏究에 着手하였다.

1879년 釜山의 濟生醫院에서 두 달 동안 種痘法을 實習하였고, 오는 길에 처가인 충주 덕산면에서 40여명에게 종두를 시술하였다. 이어 1880년에는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 동경에 가서 牛痘種繼所長인 菊池康庵으로부터 種痘苗의 製造 및 蓄藏法을 습득하여 귀국 후에 전주, 공주 등지에 牛痘局을 設立하여 牛痘法을 교육시켰다. 1885년에는 「牛痘新說」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는 牛痘의 原理, 接種法, 痘苗製造 및 保管法, 種痘器具 등 내용들이 실려 있다.

1887년에는 개화당의 일원이라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어 전라도 신지도에 유배되었고, 1891년에 풀려나 서울로 돌아와 서울 교동에 牛痘保嬰堂을 設立하고 많은 小兒들에게 牛痘를 실시하였다. 1899년에는 官立 大韓醫學校의 校長이 되어 西洋醫學을 敎育하였다.

이후 일제가 한국을 점령한 이후로 일체의 공직을 접고 활동하지 않았다. 1914년 醫生規則이 반포되자 醫生으로 登錄하였다. 1915년 全國醫生大會가 열릴 때에는 ‘朝鮮醫學의 由來와 發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고, 이때 조직된 全鮮醫會의 會長으로 추대되었다.

1924년에는 東西醫學硏究會라는 한의사단체의 회장을 하면서 한의학의 발전에 힘썼다. 만년에는 和平堂大藥房 主 李應善이 세운 朝鮮病院의 원장을 지냈다. 1935年 2月 11日 8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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