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안전’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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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안전’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가
  • 승인 2011.06.2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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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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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를 두고 약사와 의사의 다툼이 가관이다. 1년 넘게 끌었던 심의 끝에 정부가 슈퍼판매 불가를 발표하자 소비자들의 비판 여론이 거세게 밀어닥쳤고, 의사들도 약사회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명분과 실효가 무엇이든 간에 이러한 싸움의 실질적 동인(動因)은 결국 ‘밥그릇’이겠으나 표면적 쟁점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그 동안 ‘안전’을 신주 단지처럼 떠받들며 환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 있는 전문가임을 자처했던 의사들이 이번에는 태도를 바꾸어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해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다.

이 말을 꺼내면서 왠지 종래 주장과 상충됨을 느꼈던지 ‘안전성이 검증된’이란 수식어를 일반의약품 앞에 붙여두었다. 우스운 얘기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약은 모두 안전성을 검증받아야 한다(그들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여 억지로 자기들의 합리성을 부각시키려 한 셈이다.

게다가 그 동안에는 별 시덥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전문 직능 운운하며 독점권을 주장하더니 이번에는 “법으로는 약사들이 약을 판매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소위 카운터라고 하는 무자격자가 약사를 대신해서 약을 파는 일이 관례화돼 있어 약국에서 약을 사야 안전하다는 약사회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전국의사총연합 노환규 대표)며, 전문 직능을 폄하하는 논리를 편다. 그 동안의 태도를 견지한다면 “법을 잘 지키며 약사가 관리하라”고 말했어야 한다.

이처럼 의사들이 약사들과의 싸움에서 ‘안전’을 구석에 치워 둔 반면, 동시에 진행되는 한의사와의 싸움에서는 여전히 안전을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 국회에서는 한의약육성법의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기존 ‘한의약’의 정의에 ‘시대 발전에 맞게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라는 규정을 추가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 본다.

헌데 이 사소한 법률 개정을, 의사 단체들은 사활을 걸고 저지하고 있다. 대표적 이권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에서 “실험쥐가 필요한 이유는” “환자가 모르모트?”와 같은 자극적 광고를 내더니 이번에는 아예 공식적 대표기구인 대한의사협회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부풀려진 한방약침! - 이런 게 ‘시대에 맞게 응용·개발한’ 한의약이라고?”라는 제목의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게재하며 한의약육성법 개정 저지에 나섰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이는 옳은 말인가? 그렇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구호’에 한할 때 그러하다. 실세계에서 완전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다. 안전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바뀐다.

자동차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최대의 흉기다. 그러나 차가 위험하다고 “당신 자동차 타지 마”라고 하면 이에 선뜻 응할 사람이 있을까. 왜 응하지 못하는가? 자신의 편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식품의 안전에 대해서 소비자들은 ‘무한 안전’을 요구한다. 자신의 편익이 제한을 받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상반된 편익과 윤리적 요청 사이에서 안전은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편익과 윤리에 대한 합리적이고 다각적인 검토 끝에 ‘적정 안전’을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한 안전을 실세계에 강요하는 것은 손쉽게 여론을 등에 업고자 하는 치졸한 정치적 노림수일 뿐이다.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 최근 이런 전략은 너무 쉽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의사단체들이여, 그대들도 그런 손쉬운 전략을 택할 것인가? 당신들도 촛불을 들 것인가? 우습지 아니한가.

김기왕 
부산대 한의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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