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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서양의학 전래에 대한 이해 (2)
Story & History(58)
2011년 06월 23일 () 10:54:23 차웅석 contributor@mjmedi.com

여진족 청나라가 한족의 명나라를 대치하면서 중국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자, 조선의 첫 반응은 삼전도의 굴욕적인 경험에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자부심이 더해지면서 ‘북벌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오랑캐 국가 청나라는 명나라의 인프라를 그대로 이어 받은데다가 서양의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명국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아랍에서 들여온 코발트 안료를 이용한 고강도 청화백자를 포함해서 차와 비단 등을 유럽 각국으로 수출하면서 엄청난 부를 모으고 있었던 것도 그때이다.

학문적인 자부심은 대단했지만, 이렇다 할 산업기반을 갖추지 못한 조선은 청나라를 정벌하기는커녕 문명수준을 맞춰가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조선이 점점 후기로 갈수록 더 이상은 이대로 지낼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식자층 사이에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흐름은 ‘西學’과 ‘北學’이다. 서학은 서양의 종교를 들여오는 것이어서 다소 이질적이었지만, 북학은 지식인들이 청나라를 통해서 세계의 새로운 흐름을 배워야한다는 다소 온건한 개혁에 대한 시도였다.

조선후기 역사서를 보면 1792년[정조16]에 일어난 ‘文體反正’이라는 사건을 보게 된다. 정부관리들 사이에 청나라식 신문체가 유행하였고, 이것에 대해 정조가 발끈한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형식의 문장을 써서 제출하라고 관료들을 압박했고, 신하들은 제대로 된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정조의 보수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조 자신도 이미 북학 쪽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인 사건과 맞물려 정조가 신하들과 신경전을 벌인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필자의 요점은 18세기 후반이 되면 북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분위기가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등 혹 몇몇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조선은 지식인사회 전체가 알게 모르게 새로운 것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의 서양의학의 도래는 이 사람들의 신지식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박지원의 「성호사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정약용의 「의령」 등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 시대 지식인의 서양의학에 대한 이해는 최한기(1803∼1877)의 「신기천험」이다.

그는 서울 도심에 살면서 마당에 천문관측기구를 설치하고 베이징은 물론 멀리 싱가폴에서 나오는 신간까지도 받아보며 공부했던 전형적인 서울거주 유산지식인이었다[유봉학·정조대왕의 꿈]. 이 책은 Benjamin Hopson(1816~1873)이 지은 5종의 한역서양의학서를 정리한 것이다.

조선의 전통의학에 대한 입장은 다소 부정적이지만, 최한기의 등장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구질서를 대체할 신질서와 신지식을 모색하는 큰 틀 속에서 서양의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조선식 담론을 만들어가는 첫 단추였던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없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조선은 우리 스스로 서양의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전통의학과 조율해갈 시간적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강제 이식되는 과정을 겪고 말았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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