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류의학계에 경쟁력 갖고 기반 넓혀가는 동양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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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류의학계에 경쟁력 갖고 기반 넓혀가는 동양의학
  • 승인 2011.06.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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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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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제이킴 통합암센터 참관연수기

한의학 정체성 잃지 않고 자리 잡으려면 많은 노력 필요
“졸업 후 해외진출 계획, 참으로 뜻 깊고 즐거운 시간”

작년 제천에서 개최된 국제 통합종양 학술대회에 학생 진행요원으로 참가하였다. 그 때 우리 학교 동서암센터의 유화승 교수님께서 학술대회에 연자로 참석하신 하버드의 웨이동 루 박사님을 연결시켜주셔서 지난 1월 2일부터 28일까지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학교의 암 전문병원인 ‘데이나 파버 암 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 DFCI)’ 내에 설치된 제이킴 통합요법센터(Zakim Center for Integrative Therapies)에 참관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제이킴 센터에서 제공되는 통합요법들

DFCI의 외관
제이킴 센터는 데이나 파버의 환자, 환자가족 및 의료진에게 여러 가지 보완대체요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정보를 제공하고, 효과가 증명된 몇 가지 요법의 임상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현재 이곳에서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통합요법들은 마사지, 음악치료, 미술치료, 영양교육 및 상담, 기공, 침술 등이 있다.
아쉽게도 데이나 파버에서는 한약이나 생약 관련 요법과 연구는 그다지 많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이킴 센터장인 의학박사 로젠탈 박사님은 환자 개인 상담시간에 데이나 파버 이외의 기관에서 나온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생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환자 개인별로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상담시간에 환자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수준 높은 질문을 던졌다. 예컨대, 어떤 소아암 환자의 어머니가 “커쿠민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문헌과 텔로미어를 짧게 만든다는 문헌을 보았는데, 우리 딸에게 강황 보충제를 먹여야 할까요, 먹이지 말아야 할까요?”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았다.

로젠탈 박사님은 환자들의 이런 질문에 대해 본인이 알고 있는 연구결과나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운영하는 ‘about herbs’ 사이트 등을 근거로 답변을 해주었다.

‘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필자가 가장 많이 또 주의 깊게 참관한 것은 물론 침 치료였다. 제이킴 센터에는 침구사가 5명이 있는데, 모두 매사추세츠 주 침구사 면허를 소지한 중국 출신 중의사들 이었고, 웨이동 루 박사님이 이 파트를 이끌고 계셨다.

DFCI 침구 부분을 전담하고 있는 웨이동 루 박사(오른쪽)와 함께.
주로 사용되는 혈(穴)은 합곡, 태충, 중완, 족삼리, 삼음교 등의 흔히 쓰이는 혈에 약간의 이침혈을 섞는 방식이었고, 특별히 복잡한 침법을 구사하기보다는 경혈학의 기본에 충실한 침법을 사용하였는데, 방문하는 환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고 제이킴 센터에서 시행되는 침술 임상시험들도 결과가 좋은 편이었다.

침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에게서 기본적인 침법 만으로도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한의학 자체가 자랑스러웠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편, 한국 출신의 한의사들 중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데이나 파버 내에서 침술은 마사지요법과 비슷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데이나 파버의 환자들이 담당의사와의 협의를 거쳐 마사지 치료와 침 치료를 받게 되는 절차 자체가 동일하였다.

또한 아무도 마사지가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환자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술이 암 자체를 치료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항암치료의 부작용 개선, 환자의 삶의 질 향상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방의사들의 침에 대한 태도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이것은 침술을 비롯한 한의학이 우리나라에서처럼 하나의 의학으로서 서양의학과 대립 병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의학(medicine)이 아닌 요법(therapy)으로서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한의학도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관계 설정이 침과 한의학이 완전히 낯선 미국에서 한의학의 기반을 확보해 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느꼈다.

美 주류의학계에서 동양의학의 위치

매주 화요일 저녁, 특정한 기공수련법을 가르치기보다는 환자 및 생존자를 위한 이완운동+근력운동 수업의 형태로 진행된다. 강사는 이스라엘 출신〈사진〉으로 여러 가지 무술과 요가 등을 두루 섭렵했다.

침술 외에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기공교실 참석이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원하는 환자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기공교실이 열리는데, 기공교실의 지도자는 놀랍게도 이스라엘 출신의 백인(유태인)이었다.
이 기공 선생님은 태극권, 쿵푸, 가라데, 유도, 태권도 등 온갖 무술에 요가까지 섭렵했으며, 태극권 수련에 관한 책도 출판한 사람이었는데, 동양의 것, 우리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백인에게서 백인에게로 전달되는 현장을 보는 것은 자못 충격이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여러 가지를 느꼈다. 동양의학이 미국 주류 의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대단히 큰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기반을 넓혀가는 중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여기서 한국 한의학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리 잡으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졸업 후 해외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는 참으로 뜻 깊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겨우 한 달 보스턴에 머무는 동안 네 번이나 지하철이 멈추고 공항이 폐쇄될 정도로 내리던 폭설, 눈 온 뒤에 생긴 엄청난 구정물 웅덩이 때문에 고무장화를 신고 출근하던 보스턴 사람들도 기억에 남는다.

한의대에 다니다 보면 눈앞의 시험과 현실에 매몰되곤 하는데, 전혀 다른 자연과 사회적 환경에 접하여 여러 가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유화승 교수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유리나 / 대전대 한의대 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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