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서양의학전래에 대한 이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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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서양의학전래에 대한 이해 (1)
  • 승인 2011.06.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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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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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57)

만약에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갔는데 두통이 생겨서 진료를 받으러갔다고 가정하자. 대한민국 코리아에 대해서는 남북 분단, 북한의 핵도발 등 해외토픽 뉴스에서 전하는 정도밖에 모르는 그 의사가 ‘남북관계 긴장 및 북한의 전쟁 위협으로 인한 긴장성 두통’이라고 진단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다소 어이없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수준이다.

중국의 金元時代에 의학이 발달한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그 당시 혼란기고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질병도 많았다. 그래서 금원시대의 학술유파가 생길정도로 의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이 정도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금원시대의 저명한 학자들 중에 전쟁의 피해 속에서 자신의 의학적 견해를 키운 의학자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東垣 李杲 한사람정도가 아닐까싶다. 대지주의 아들이었던 그는 자신이 살던 터전이 北京과 洛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이 한족사회를 지배하기 위해서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곳에 살았다. 張元素 劉完素 張從正은 전쟁과 무관했고, 丹溪 朱震亨은 오히려 풍족한 것이 문제가 되던 시절에 살았다. 이동원의 직계 제자였던 羅天益은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된 사람들에 대해 기술하였다.

조선에 서양의학이 전래되는 것에 우리가 이해하는 수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듯하다. 지금은 Biomedicine으로 대표되는 서양의학이 득세하고 있다. 그래서 그 패턴을 맞춰가지 않는다면 전통의학은 멸절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있다.

이러한 시각은 그대로 조선에 서양의학이 전래되는 역사기술에도 반영되어있다. 즉 조선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소개된 서양의학은 폐쇄적인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배척되어 오다가 알렌과 그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에서 보여준 서양의학의 파워풀한 치료효과에 사람들이 매료되면서 조선의 전통의학은 급속히 쇠락해져갔다는 식이다.

그러나 알렌이 들여왔다고 하는 의학기술은 서양의학계에서도 비주류였으며, 수준이 낮았고[강신익, 몸의 역사 몸의 문화], 일제시대 경성제대 출신 의사들은 자신들의 서양의학이 간단한 수술과 소독, 그리고 항생제의 투여 외에 특별한 장점이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내과질환에 대해서 전통의사들이 훨씬 많은 것을 해준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1930년대가 되면 의사출신들이 도리어 전통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여인석, 한의학 식민지를 앓다] 그리고 알렌이 제중원을 설치한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정책적으로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공존시키면서 양자의 장점을 적절히 이용하는 운용의 묘를 보여주었다. 이 제도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선의 통치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지속되었다.[맹웅재 등, 강좌한국의학사]

알렌과 제중원으로 대표되는 서양의학이 생각만큼 막강하지 않았다고 보여지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시기의 서양의학에 대한 환상은 다소 벗어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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