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표준화 이후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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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표준화 이후를 준비하자
  • 승인 2011.06.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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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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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래 가장 광범위하게 내부의 지지를 받았던 한의학 개혁의 모토는 ‘표준화’였다.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해서는 내부 구성원 사이에 이견이 많았고, ‘산업화’ ‘세계화’는 본질적 요소라기보다는 학문의 현대화에 뒤따라 진행될 응용적 성격의 과제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국내에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 역시 전통의학의 표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여러 분야에서 그들이 우리의 역할 모델이 되어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러한 전통의학 표준화의 흐름은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어 갖가지 국제 표준을 만들어 내는 데 이르렀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이미 경혈의 명칭과 위치에 대한 표준안과 전통의학 용어에 대한 표준안을 내 놓았으며, 차기 국제표준질병사인분류(ICD 11)에도 전통의학 진단명에 대한 표준안이 등재될 것이라 한다. 또한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도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진료기술과 치료도구에 대한 여러 가지 표준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금 한의학계는 표준화가 대세인 것 같다.

하지만 이제까지 진행된 표준화 작업에는 중대한 맹점이 있었다. 바로 한의계에서 만들어낸 대부분의 표준이 인위적 표준, 즉 깊이 있는 연구나 광범위한 관찰로부터 도출된 표준이라기보다는 관계자들의 합의에 의한 표준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와 같은 표준이 지금껏 다수의 지지 속에 꾸준히 제정되어 왔는가? 표준화가 선행되지 않고는 한의학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인식이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나쁜 표준이 없는 표준보다 낫다(경희대학교 이상훈 교수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잘 대변해 주는 말이다. 그 동안에는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기에 부실한 기준조차도 우리에겐 절실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제 표준화 이후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사실, 표준화를 역설했던 사람들은 모두들 그 이후를 생각했을 것이다. 즉 일단 표준이 정해지면 그것을 발판으로 비판과 검증이 가능할 것이고 보다 나은 표준이 만들어짐으로써 우리 학문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발전적 파괴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의학의 영역에서 합의를 또 다른 합의로 파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표준화 이후의 과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해진다. 합의에 기초한 ‘묻지 마’식 표준이 아닌 어떤 이유를 댈 수 있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이유’란 것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경험적 근거이고 또 하나는 논리적 또는 이론적 근거이다.

경험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근거중심의 한의학 연구가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고,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 준거를 만드는 작업이다.

두 가지를 뭉뚱그려 말하자면, 한의학계의 차세대 과제는 한의학의 학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한의학을 근거중심의학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듯 하나 종래의 한의학이 관찰했던 현상을 새롭게 설명할 큰 그림을 그리는 이론화 작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향후 주력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다시 묻는다. 경혈의 위치가 ‘합의’될 수 있는가? 지금의 표준은 필요악일 뿐이다. 한의학의 학문화를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김기왕  / 부산대 한의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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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2011-06-03 10:45:59
각자 스승의 말만 옳다고 믿으니.. 학문적으로 통일성 따윈 없다.
임상의 끼리 쓰는 용어도 진단법도 치료법도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표준화를 외치면 뭐하는가? 기성 한의사들이 안바뀌면
교수직함에 만족하는 한의대 교수들이 안바뀌면 이루어지는 건 없다.

표준화 2011-06-03 10:44:02
모든 교과서를 개편해야 한다.
모든 능력없는 교수를 갈아치워야 한다.
지금 한의대생이 배우는 수준으로 표준화를 논할 수 없다.
과거의 한의사들은 지금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결국 표준화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올 한의사들이다.
근데 한의대 교육은 썩었다. 전혀 배워서 나오는게 없다.
다들 사교육에 집착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사교육은 fact보다는 경험이니까... 스승이 맞다면 그러려니.

한의사 2011-06-01 21:39:16
진실이 아니라면 허구가 50% 정도일지 허구가 99%에 이를지의 문제가 남습니다. 더 큰 문제는 침구학 경혈학 교과서에 수록되고 불쌍한 후배 한의대생들이 열심히 외워 시험보고 졸업해야 하는 내용의 50%가 허구일지 99%가 허구일지 한의사 각자의 믿음에 맡긴 채 영영 미아가 된다는 점입니다 허구가 50%일지 허구가 99%일지 연구를 안 하고 합의된 방안을 내밀며 또다시 암기를 강요하는 한의대 교과서와 교육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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