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56) | 조선의 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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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56) | 조선의 수의학
  • 승인 2011.06.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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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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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나라는 ‘구제역’으로 호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짐승들이 아플 일이 뭐 있나? 병들면 없애면 그만이지’했지만, 현대인의 생활은 가축들의 질병이 단순히 육식을 좀 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생산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지난 몇 년 간의 호된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앞으로 가축전염병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더 치러야 한다.

동아시아의학에서 수의사의 직분은 「周禮」의 ‘天官冢宰’에 의료인의 직급을 구분하면서부터 등장한다. 醫師 食醫 疾醫 瘍醫 獸醫라고 구분하고 있는 「주례」의 ‘천관총재’는 주나라 때 주공이 쓴 것이라고 하지만, 신빙성은 없고 일반적으로 기원전 3~5세기 전국시대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수의의 직분이 구분되었다는 것은 그만큼의 전문지식의 범주가 일반 의료인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인간이 가축을 삶의 동반자로 선택하면서부터 수의학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당시의 가축은 식용이 아닌 중요한 교통수단인 ‘말’, 농업생산의 큰 반려자였던 ‘소’가 중심이었고, 수의학의 지식체계도 주로 이 가축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에서는 1399년 제생원에서 「향약제생집성방」을 간행하면서 「신편집성마의방」 「신편집성우의방」을 동시에 간행하였다. 「향약제생집성방」은 「향약집성방」이 간행되기 전까지 조선 개국 정부의 의료정책의 근간을 지탱해준 중요한 텍스트이며, 조선 개국 정부의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만들어 낸 것이다.

그만큼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도 국가의료의 근간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의 하나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내용도 충실하고 조선의 현실을 잘 반영한 수의학서로 평가받는다.[정의민, 「신편집성마의방」의 의사학적 고찰]

「신편집성우의방」의 ‘온역문’에는 다음과 같은 약방문이 있다. ‘治瘴疫方’이라고 이름 붙은 이 처방은 石菖蒲 淡竹葉 葛粉 鬱金 綠豆 蒼朮 등분한 것을 가루 내어 꿀과 황랍에 버무려 소의 입속에서 넣어준다고 하였다. 열이 심하면 大黃을 가미하고 콧마루가 말라있으면 無汗이라고해서 麻黃을 가미한다. 출혈에는 蒲黃을 가미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병이 들었을 때 땀을 내고 통변을 시키고 구토를 통해 몸의 병사를 자연스럽게 해소하려는 본능적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자정능력을 약초를 이용해 배가시키는 기술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한토하삼법이다.

같은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가축도 그와 유사한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다고 믿었고, 그래서 인간에게 쓰는 처방을 가축에게도 투약했다. 물론 사람과 달라 진단법, 증상 표현법 등등이 같지 않기 때문에 다소 사람의 질병에 사용하는 처방법과는 다르지만, 오랜 경험과 통찰력을 통해서 나름의 처방법과 치료기술을 축적시켜왔다.

말들에게는 경락도 그려주었고 경혈점도 표시해 두었다. 가축전염병이 들었을 때 혹은 외국에서 들여온 치료법이 백발백중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우리 전통의 치료법도 한번 써볼 수 있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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