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승부 거는 젊은 한의사 많아야
상태바
문화에 승부 거는 젊은 한의사 많아야
  • 승인 2011.06.02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재

이상재

contributor@http://


“한의원 불황,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해법이 없다”

한의원 매출 감소, 한의사 위상 추락, 한의대 입학점수 하락….

한의계가 어렵다고들 한다.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한결같은 상황판단처럼 보인다. 약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한의사이지만 한의학 편에서 나름은 객관적이라고 위안하면서 이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 한의계의 어려움은 ‘문화와 의료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다.

왜 홍삼시장이 커졌는데 한의원 약 환자가 줄어들어야 하는가? 옛날에 한의원에서 약 먹던 사람들이 지금은 홍삼을 먹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타민 시장이 커졌다고 병원 가는 사람이 줄었는가? 아침마다 식탁 위의 비타민 통에서 비타민을 꺼내 먹는 것은 최근에 자리 잡은 우리사회의 건강문화다. 그것과 병원에 가는 빈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홍삼은? 비타민과 병원의 관계보다는 홍삼과 한의원의 관계가 더 밀접한 때문인가….

그렇다. 한의학은 원래가 문화적인 요소가 강하다.

 

양문화가 오히려 한의학 성장 저해

사실 한국사회의 한의학은 문화 덕에 살아남았고 부흥했다.

문화란 인간이 만들어낸 행동방식 내지는 사고방식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가만 보면 이 행동과 사고방식에는 불로장생, 무병장수를 꿈꾸는 인간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그것을 건강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도 다양한 형태의 건강지향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건강문화 중에 한의학을 살아남게 한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몸이 허하다’는 문화인식과 몸에 좋은 것을 끓여 마시는 ‘주전자 문화’라고 생각한다.

‘몸이 허하다’거나 ‘기가 허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 80% 정도는 이 말을 사용해본 적이 있고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아주 일반적인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곤하면 몸이 허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 문화인식 때문에 생긴 것이 한국의 보양문화, 보약이 아닐까? 사실 한의학은 이 허하다는 문화인식을 바탕으로 호황을 누렸다고도 볼 수 있다. 한의사들은 이걸 적절히 활용했고, 한의사들 때문에 그런 인식이 문화현상으로 더 고착화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화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이 문화의 덕을 전국의 수많은 한의원들 보다 정관장이나 천호식품, 홈쇼핑들이 보고 있다.

한의학을 존재케 해주었던 그 문화이지만 몸이 허해서 그렇다는 손쉬운 진단과 70노인 맥이라는 말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덕에 한의학이 어려워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료의학으로서의 자리매김이 시급

한의사제도가 생긴 반세기 동안 우리 스스로 의료다워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 맞다. 물론 최근의 의료개념은 단순히 치료의 개념을 넘어서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의료가 아니라 한의학이 치료로서의 의료로 자리매김하냐는 중요한 문제다. 현시점에서 한의학이 의료로 자리매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공통의 매뉴얼’ ‘단일 질환을 표방하는 한의원’ ‘탕약에서 탈피’ 뭐 이런 말들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내 분야는 아니니….

다만 의료로 자리매김하는데 공통의 매뉴얼은 꼭 필요하다. 한의사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의학이 의료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 한의원, 저 한의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니 환자의 입장에서는 한의사가 하는 소리나 정관장 판매사원이 하는 소리나 다 비슷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사실 구사하는 용어도 비슷하지 않은가? ‘허해서…’ ‘순환이…’ ‘간이…’ ‘면역력이…’ 우리는 한방의 최고 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환자들은 대기업의 마케팅력에 더 큰 신뢰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진단의 표준화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고 부분적으로나마 진료 매뉴얼을 보게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한의학은 한의사의 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출발이 되어줄 매뉴얼이 우리 젊은 한의사들에게 필요하다. 수 천 개의 감으로 발전해 나가겠지만 출발은 같아야 한다. 그 출발은 한의사들 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고, 환자와 한의사 간의 공통의 소통언어가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자기 진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많은 젊은 한의사들이 임상가에서 씁쓸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임상 초기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매뉴얼만 있어도 그렇게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임상강의들에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덜할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의 직무유기를 논하기 전에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전자 문화를 살리자

다른 한편으로 한의학이 그렇게 문화적인 요소가 많다면… 한의원의 어려움과는 달리 문화로서의 한방이 그렇게 호황이라면…

이제 문화에 승부를 거는 젊은 한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환자-치료가 의료라면 문화는 소비자-구매, 체험, 교육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그동안 우리 한의사들의 패착 중에 하나는 한의학을 우리만 품고 숨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집에서 몸에 좋은 것을 끓여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고 싶어 하는 한국 주부들의 바람을 한의사들은 외면했다. 한의원이란 공간에서 그런 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한의원에서 끓여주는 1제 30∼40봉지의 탕약만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몸에 좋은 것을 끓여 먹는 주전자 문화의 시작은 「동의보감」의 단방요법이라고 생각한다. 허준 선생도 그랬다. 여건상 처방을 구하지 못하면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향약이라도 끓여 먹어라. 그게 단방요법 아닌가? 그런데 한의사들은 왜 탕약만 고집했을까?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그들을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한국사람 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그 중 한 사람이 발을 삐면 나머지 둘 중에 한 사람은 꼭 한의원 가서 피 빼고 침 맞으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한의원은 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일 것이다. 할머니들 중에 소화가 안된다며 사관에 침 놔달라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대해서 잘 모른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세대들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모르니 한의원에 가지 않는 것이다. 한의원에 누가 오는지 보라. 대부분 왔던 사람들이 온다. 집에서 몸에 좋다는 것 끓여 먹는 사람들이 한의원에 와서 한약도 처방 받고 하는 것이다.

한의원에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침 맞아 본적 없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알고 놀랐다. ‘머리 아픈데 침 맞아도 돼요?’, ‘침 치료비가 이렇게 싸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 것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한방은 보험이 됩니다’, ‘한방은 안전합니다’ 이런 주제의 쯔무라 광고를 심심찮게 접했던 기억이 있다.

21세기의 모든 사회현상은 한의학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한의사들이 위축되는 것은 지금의 한의원의 모습과 지금의 시스템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의원 밖에서, 한의학 밖에서 이 사회가,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면 잠을 설치는 설렘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상재 / 티 테라피 한의원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