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 대가 우천 박인상 선생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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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 대가 우천 박인상 선생님을 그리며…
  • 승인 2011.05.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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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석

안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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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은 점점 푸르러 그 색이 짙어 가는데 한의학계의 원로 우천 박인상 선생님께서는 이 화창한 봄날을 뒤로 하고 지난 5월 6일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한의과대학교육 이전 세대의 몇 분 안 계신 원로 선생님들께서 한 분 한 분 떠나실 때마다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전통 한의학의 맥을 이어주시던 선생님들이 떠나시고 나면 이제 누구에게 여쭙고 조언을 구해야 할지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고 허전합니다.

우천 선생님은 경기도에서 명망 높던 선친 소천 선생의 뒤를 이어 한의학에 몸담은 지 어언 70여년을 오직 임상과 후학교육에 힘써 오셨습니다. 초창기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설립시에 김정제 선생님과 더불어 한방병원의 틀을 잡으셨고, 중풍센터 소장을 맡아 진료에 힘쓰시는 등 지금 한방병원의 초석을 놓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자취는 지금도 경희대 한방병원의 처방집에 오롯이 남아 후배들에게 지남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홍순용 선생님 등과 더불어 사상의학회를 창립하시어 교육과 임상에서 사상의학의 저변 확대에 지대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동의사상요결」은 여러 사상처방을 정리하여 질환별로 쉽게 찾아 쓸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이 창방 수록하여 사상방의 활용을 넓혀 주었습니다. 사상의학을 연구하고 널리 보급하였지만, 선생님은 사상의학에만 국한하지 않으시고 증치방과 사상방을 넘나들며 경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기존 의서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적인 용량의 군약 처방이나 사상방과 후세방의 혼용은 선생님이 아니면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 청구한의학연구회를 비롯하여 배원식 맹화섭 선생님 등 원로 선생님들과 교류하시면서 수많은 강의를 통하여 후학들에게 아낌없이 선생님의 지식을 전수해주셨습니다. 노년에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임상진료는 물론 당신 스스로도 항상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보면 탐구하는 모습으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셨습니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무명의 촌로든 제자든 따지지 않고 묻고, 일리 있다 싶으면 바로 적용해보고 실천하는 분이셨습니다. 때로는 코엑스의 의료기 전시장을 찾아 새로운 것이 있나 살필 정도로 앎에 대한 열정은 젊은 한의사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왕성한 탐구정신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배울 점이 있으면 일반인에게도 막걸리 사주면서 배워야한다고 하셨지요. 자만심과 자기 고집으로 환자를 대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궁구하여 창의적인 공부를 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醫者는 意也”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의학입문」처럼 진솔한 책은 없다며 침침한 눈에 돋보기를 겹쳐 쓰시면서도 후학들이 찾아보기 편하도록 일일이 자르고 붙여 동의보감 편제로 편집해 주신 것을 보고 얼마나 후학에 대한 사랑이 크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평생 해오시던 탐구는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항상 궁구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는 선생님의 말씀 되새겨 간직하겠습니다.

특히 동의과학연구소를 창립하시고 잠시 저에게 책임을 맡기실 때 한의학의 근본 원리를 잊지 않고 새로운 지식으로 과학적인 연구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신 점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계신 그 곳에 아픈 환자는 없겠지요.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한 휴식을 가지시기를 염원하며 선생님을 그립니다. 

 2011. 5. 8.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안 규 석 삼가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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