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2만 명의 한의사와 2만 개의 한의학, 그리고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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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2만 명의 한의사와 2만 개의 한의학, 그리고 표준
  • 승인 2011.05.1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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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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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분야 국제산업표준 선점노리는 중국
시장창출과 경쟁력 위해 우리도 관심 높여야

한의학이 사랑받는 이유들 중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전인적인 관점과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화하여 주는 치료의 다양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의사의 수가 많지 않았을 때에는 주류의학에서 효과를 보지 못해 한의원을 찾아 온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의학은 이러한 특징으로 충분히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면허를 받은 한의사의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어림잡아 면허의사 수 10만 명의 20%에 달한다. 그렇다면 한의진료가 전체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한의사 2만 명 시대의 한의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예전처럼 변방에 자리 잡고 주류의학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한의학으로 치료가 잘되는 질환들을 알려 한의원으로 바로 찾아오게 만들거나 한의학의 장점인 전인적인 관점을 살려 1차 주치의로서 역할을 하던가 해서 의료인으로서 우리의 20% 몫을 해내야 한다. 우리가 주류의학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인간사회에서 지식, 정보나 방법들은 자연계의 엔트로피 증가원리와 유사하게 계속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증가는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초과하게 되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한다. 이러한 복합화를 인간이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표준이다.

“표준화란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주어진 범위 내에서 최적 수준의 질서확립을 목적으로 공통적이고 반복적인 사용을 위한 규정을 만드는 활동”(ISO/IEC Guide 2(2004))으로 정의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ISO(국제표준화 기구 :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회의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침에 대한 국제표준을 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와중에 중국에서 전통의학의 국제표준을 다루는 기술위원회를 제안하여 2차 회의가 열린 것이다.

총 14개국이 참여했으며 수용인원이 60명인 회의에 중국은 20명이 넘는 대표단을 보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 했다. 이번 회의에서 각 분야에 대한 5개 워킹 그룹을 만들었으며 다행히 우리는 2개의 워킹그룹에 대하여 (co-)convenor 자격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이 워킹 그룹에서 수많은 논쟁을 거쳐 한의학분야의 많은 국제 산업표준을 내놓게 될 것이다.

표준은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의 기술기반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산업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으로, 표준의 선점이 곧 새로운 시장의 창출 또는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로 인식되고 있다.

헨리포드의 공정 표준화가 자동차의 대량 생산과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는 것을 아는가. 1995년 발효된 WTO/TBT 협정에 따라 이미 국제표준이 존재하거나 현재 국제표준이 제정 중인 경우에는 새로운 기술이나 기준을 제정하여 자국에 유리하거나 혹은 상대국에 불리한 시장여건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한번 중국이 주도하여 한의학의 국제 산업표준을 만들고 세계시장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가 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김치와 기무치가 국제표준인 Codex승인을 위해 벌였던 경쟁을 기억한다면 한의학에서 그 같은 상황이 다시금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표준의 개념을 체화하고 관심을 기울여 국내표준을 만들고 산업과 연계하여 우리가 어떤 산업에 대하여 표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지 머리를 맞대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한의학의 특징들 중에는 특수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도 있다. 맞춤처방도 있지만 통치방도 있지 않은가.

김윤경  /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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