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에서 생각해 본 한의학과 한의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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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에서 생각해 본 한의학과 한의사 (3)
  • 승인 2011.05.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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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배

박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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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국제화, 어떻게 해야 실속 있을까?
“세계의료시장 진출과 성공을 고민하자”

 중·일은 관심 없는 국제표준화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유행처럼 된 국제화는 국제시장화의 줄인 말이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한의계는 지금까지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국제시장에 팔았고, 팔 준비를 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것이 아닌가 걱정해봅니다.

혹시 한의계에 국제화는 나라밖에서 한의계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실속 없는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아니었을까요? 나라 밖에서 ‘Oriental Medicine’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보다는, 한국에서 선택한 용어를 쓰고 있는 데가 있다는 것만으로 일부 외유 한의사들은 흡족해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더 많은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그렇게 자기를 소개해 갔을 것입니다.

한·중·일 가운데 가장 약체인 한국이 국제 용어표준화, 경혈표준화를 통해 무슨 실속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표준은 결정이 되면 따라야 할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데, 중국과 일본은 따를 의도가 없고, 한국은 그들을 따르게 할 힘이 없는데, 그런 역학구조에서 만드는 표준은 한국만이 따라가야 하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국제시장무대에서 한의학의 상표를 잘 만들어서, 한의학을 팔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때인데, 중국은 Chinese Medicine, 일본은 Kampo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그들의 브랜딩은 완료하였습니다, 제가 내다보건대, 그들은 절대 Oriental Medicine이나

 East Asian medicine을 그들 의학의 브랜드로 쓰지 않을 것인데, 이 마당에 한·중·일 의학을 아우를 통칭어를 꿈꾼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말은 구한말 이전의 한국문헌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정신문화연구소의 문헌들을 일람하면서 나열해 본 이름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동국정운, 동문선, 동이지국, 동사강목, 동해, 동의보감… . 그런데 ‘동양척식회사’ ‘동양 3국’ ‘동양의학’이란 말들은 모두 일제 때부터 등장하는 말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해묵은 오류 바로잡아야

한편 한의학은 1950년 무렵부터 국제의학계에서 ‘Korean Medicine’으로 불려졌고, 그런 논문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를 지나면서 Oriental Medicine 이라는 오역을 되풀이해온 흔적이 뚜렷합니다.

1960년 말부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의학 개칭(한나라 ‘漢’자에서 나라 ‘韓’자 韓醫學으로)의 열매로서, 1987년에 의료법에서 한의사, 한의과대학, 한의학의 이름이 다 바뀌었음을 한의사라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문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법 개정을 한의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묵은 오류를 바로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이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한의계의 처지를 보면서, 후배들에게 제 이름만이라도 제대로 물려줘야한다고 생각해봅니다. 빼앗긴 들에도 오는 봄이지만, 혼이 나가서 봄이 오는지 가을이 오는지도 모른다면 오는 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국과 미국의 의과대학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였습니다. 임상진료, 연구, 교육, 행정의 면면을 야트막하겠지만 경험하면서, 한의사가 기여하고 제공할 수 있는 내용이 실로 무궁무진함을 발견합니다. 이곳의 의료진들이 감당해내지 못하는 부분들을 우리 한의사라면 훨씬 더 잘 감당해내겠다는 부분들을 날마다 찾아냅니다.

그러나 제도상 의료인 자격이 아니기에 엄두를 내면 안 되는 경험들을 하면서, 중인의 신분을 벗으려고 노력한 한의계 선현들의 고뇌를 자주 생각합니다. 면천의 길을 갈구했던 장영실 같은 과학자의 삶을 떠 올려봅니다. 그러나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한의관련 상품 수출 가능성 밝아

현실을 받아 안고 직시할 땐, 의료인으로서 한의를 할 수 있는 한국 안에서의 장점도 또한 많이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임상진료로는 일단 한국 안에서 한의사의 정의된 직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치료기술, 기기, 치료약품들을 개발하여, 그 지적 산물들로서 세계의료시장을 겨냥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기기와 치료기술들을 구현하는 것이 한국의 한의사만큼 잘 하는 전문인들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 의료인 한의사가 세계의료시장으로 진출할 길도 어떤 식으로건 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의 중약회사들이나 일본의 쯔무라제약 회사들처럼 한국의 한약들을 시장에 내 보내는 길을 우리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맥진기나 온열기들을 구미 의료시장에 진출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의료무대에 내는 방법과는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구매자가 다르니까요.

한국산 한의용품이 유럽과 미국시장에 진출하여 의료인들한테 공급되는 것을 가까이서 본 일이 자주 있습니다. 왜 그리도 해당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런 시장에 내놓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시장을 선도하는 상품이 100을 받고 팔리면, 한국 제품의 내용물은 제 판단에는 80∼90은 받고 팔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50도 못 받고 팔리더군요. 가까이 들여다보니, 상품의 끝마무리, 포장, 상품의 이미지 관리, 판매 후 서비스들에서 그 품격을 따라가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모든 면이 우리가 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이 전혀 아닌 것들인데도 개선이 쉽게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안타까움에 가슴을 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시장의 최고가 침 본체의 생산비와 최저가 침의 생산비 차이는 호리지차(毫釐之差)일텐데, 소비자 가격의 차이는 천양지차에 가까운데, 한의용품의 소비자 가격을 높일 수 있는 완성도를 높이고, 사후관리를 향상하는 노력을 왜 하지 않을까요? 사장님의 정신과 공장장의 정신의 차이일까요? 아니면 무엇일까요?

 국제적인 교육자 양성해야  

외국에서는 지금 막혀 있는 의료인 한의사의 길은 차차로 열어가기로 하고, 강등된 침구사로서 한의사의 품격의 진료를 한다고 치더라도, 대신 한의진료기술과 한의약품, 기기들의 시장은 기다릴 필요 없이 달려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료 교육상품 시장도 넓어져 가고 있는데, 문제는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 치료법들을 시장에 내어 놓을 국제적인 교육자와 학자들이 모자란다는 숙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국제무대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할 이미지로 홍보하고, 광고하면 하지 않는 것 보다 못합니다. 먹칠은 백지를 그냥 두는 것보다 못하지 않나요? 국제무대를 알고 한의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숙고하여 나온 국제화에 알맞은 한의사에 대한 이름, 한의학의 용어들을 해당 문화권의 용어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은 ‘Dry Needling = acupuncture’를 가지고 직역간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물리치료사들은 침을 물리요법의 범주에 넣으려고 하고, 침구사는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사이에, 물리치료사들은 그들이 쓰는 침법은 ‘Dry Needling’이라고 하고 있죠. 이렇듯 실체를 어떻게 부르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의료인 못지않게 학문을 닦고, 사람을 사랑하는 한의사 여러분과 함께 세계의료시장을 어떻게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길 바랍니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봉사적인 의료법도 함께 개발되기를 소망합니다. 변함없이 찾아 올 봄 들녘에 서서, 씨앗을 뿌리고 추수를 꿈꿀 수 있는, 뜻을 아는 한의사의 혼이 살아 있기를 기원합니다. 〈끝〉

 박 종 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채플힐 캠퍼스 Memorial Hospitals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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