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79) - 李相國 (1916∼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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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79) - 李相國 (1916∼1976)
  • 승인 2011.04.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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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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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한 만학도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을 지낸 李相國은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했던 인물로서, 1952년 홍익대 법학부를 졸업한 후 1969년에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집념의 만학도이기도 하다. 이후 석사과정도 마쳐 학문적 성취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한의계에 투신하기 이전에는 내무부 고위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재직하였다.

 

1972년 간행된 「醫林」93호에는 李相國이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강연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 보고대회에서 그는 일본 한방계의 연구경향과 국제적 동향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당시까지 일본과 한의학 교류를 하여 왔고 다음 해에 세계침구학술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도록 예정되어 있는 시점에서 한의협 부회장의 입장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1976년 8월 최초의 한의학박사가 배출된 것에 한의계가 축제 분위기였을 무렵 李相國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의 서거는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었다. 특히 회장으로서 李相國과 함께 수년간 협회를 이끌었던 韓堯頊 회장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韓堯頊은 李相國의 서거를 다음과 같이 애도하였다.

“…한때는 비운의 시대상 속에서나마 천하를 주름잡았다면 선생의 일화며 만학으로 한의학을 수학하여 석사의 위에 이른 불굴의 의지를 우리는 선생의 길을 뒤따를 그날까지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선생은 또 선생의 말년에 너무나도 혁혁하게 우리 한의학계에 끼친 공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협회 의권옹호위원장으로 발탁 한의계 의권 옹호에 발 벗고 나섰고 선생의 부단한 투혼은 업권 증진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후 선생에게 거는 한의계의 기대는 부회장이라는 중책을 두 차례나 맡겨 드렸습니다. …”

비록 화려하게 역사를 수놓지는 못하였지만 음지에서 드러나지 않게 한의학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李相國의 공로는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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