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77) - 許燕(1921∼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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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77) - 許燕(1921∼1995)
  • 승인 2011.03.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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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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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曜漢方」창간과 무료봉사로 한의사회의 귀감이 된 한의학자

 

“呱呱의 발성을 울리는 첫 순간. 이제부터 우리 화요한의학연구회에 연구의 결실을 만천하에 대범하게 그 첫 선을 보이노라!
기간 본회원의 성과 열을 다 하여 한의학발전과 상호친목을 돈독히 하면서 어언 삼개성상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난관을 거쳐 늦게나마 조그마한 책자를 발간하게 됨은 오직 본 회원들의 지도와 협력의 덕으로 생각하오며 특히 총무인 조영호씨의 노고와 아낌없는 희생의 대가에 감루를 금치 못하오며 미숙한 회장인 본인의 무성의를 절감하여 제회원의 관용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본 화요한의학연구회는 초창기에 재경충남한의사 십여명으로 출발하여 오다가 본회의 순수한 한의학연구단체의 목적에 동조하시는 한의사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호응하여 재경충남을 떠나 문호를 열어 현금에 이르렀다. 본래 모임이라 하면 고립을 탈피하여 중의를 키포인트로 하여 상호의사를 존중하고 개인의 연구심을 협력하면서 신중히 검토 비판하여 나감이 우선하여야 한다.
우리 한방계가 급기야 세계만방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대가 다가왔기에 더욱 더 우리 자신의 실력을 배양하지 않으면 안 될 차제에 본 화요한의학연구회의 문호가 개방되었사오니 뜻이 있으신 한의사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리면서… 앞으로 본회를 대변하는 회지에 대하여 가차 없이 독자제위의 질책과 지도편달을 바라며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위의 글은 1972년 화요한의학연구회의 기관지인 「火曜漢方」을 창간하면서 古松 許燕 회장이 쓴 창간사이다. 화요한의학연구회는 재경충남한의사회가 모태가 되어 재경충남한의사에 국한하는 회원자격을 넓혀 학술에 뜻있는 한의사들까지 아울러 전국적 학회로 만든 것이다. 현재에는 ‘청구한의학회’라는 명칭을 거쳐 ‘체형사상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 중에 있다.

창간호에 실린 글들은 특별히 사상체질의 감별법에 대한 것들이 많은데, 이것은 당시 학회가 이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이 토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許燕 회장은 1974년 6월부터 3주간, 겨울철에 2주간 모두 5주간만 제외하고, 1년 53주 중에서 48주간을 꼬박 모이면서 회원자질향상과 학술연마를 위한 학술강좌를 실시하였다. 11월 첫째 주 화요강좌부터 4주일 동안 「內經」과 「周易」의 講座를 실시하여 素問, 靈樞에 나오는 周易의 이치를 해득하고자 하였고, 6월에는 洪淳用의 「鍼灸經驗方」, 7월말에는 李炳幸의 「子午流注法」, 9월 첫 강의에는 崔周若의 강좌가 진행되었다.

8월 말에 열린 임시총회에서는 무의촌진료를 결정해 춘천지구 소양국민학교에서 집단무료진료를 실시하여 21명의 회원이 솔선하여 8월 30일에 주민 1천명을 치료해주기도 하였다.
許燕 회장에 의해 개발된 체간측정법은 그의 아들 허만회에 의해 계승되어 학회의 임상경험집과 학회지를 통해 연구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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