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49) |「승정원일기」 속의 의학기록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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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49) |「승정원일기」 속의 의학기록 ③
  • 승인 2011.03.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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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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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일가 죽게한 인조의 아픔이 病으로…

「승정원일기」 속의 의학기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당대의 가장 고급의학기술이 행해졌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실제 시행된 기록이라는 점, 한 사람을 중심으로 진단과 치료와 예후의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의 세세한 내용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그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인조[재위 1623-1649]는 신하들의 갑작스런 부추김에 준비 없이 왕이 되긴 했지만, 이괄의 난[1624] 때 서울을 버리고 공주까지 피난을 가면서도 그 사태를 잘 수습했고, 병자호란[1637] 때에는 삼전도의 수모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조선반도를 전쟁 속으로 몰아넣지 않고 동아시아의 격동기를 잘 버텨낸 조선 16대 왕이다.

사소한 병색은 내색도 하지 않았고, 의원들이 병색이 심하니 치료해야한다고 간곡히 말해도 늘 괜찮다고 물리쳤던 인조는 재위23년[1645]을 전후로 해서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기존에 소소하게 앓았던 병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기도 했지만, 귀에 생긴 새로운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죽을 때까지 인조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귀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에는 귀속이 헐고 종기가 생기며 진물이 나오며 귀가 부어오르기까지 한 것이다. 왜 이때 갑자기 이런 병이 생긴 것일까?

현대적으로 말하면, 저항력이 약해져서, 혹은 예기치 못한 감염에 의해서, 또는 노화가 시작되어서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생활을 주변정황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아시아의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즈음에 생긴 하나의 큰 사건에 주목하게 된다.

1645년 4월 26일 소현세자가 학질로 인해 사망한 것이다. 실록의 기사는 소현세자가 병사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많은 사가들은 소현세자가 아버지에 의해 혹은 아버지의 묵인아래 독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어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도 반역의 누명을 씌워 사약을 내렸고, 섬으로 귀양 간 큰 손자 석철마저도 죽이게 된다.

자식이 얼마나 못된 짓을 하면 아버지가 그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자신을 대신해서 청나라에 가서 볼모생활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장한 큰아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었을까? 그것도 모자라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인 이유는 뭘까? 혹시 죽이고 싶진 않았지만, 죽여야만 하는 남다른 사정이 있지나 않았을까? 그래서 겉으로는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혼자 몰래 마음앓이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자세하다는 승정원의 기록도 당시 인조의 그런 마음상태까지는 기록하지 못한 듯하다. 하긴 인조만한 성격의 인물이 그것을 내색했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1645년 이후의 「승정원일기」의 의학기록은 그가 이미 그 사건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인조는 당시에 아들 일가를 죽게 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강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들을 그렇게 보낸 아버지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인조는 그 병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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