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천연물의약품? 한의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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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천연물의약품? 한의계는?
  • 승인 2011.03.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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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신

박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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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2001)’이 제정된 이후 한의계는 또 하나의 고민이 늘었다. 기존 한약제제와 생약제제 사이의 혼란에 천연물신약이라는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한의계는 이 모두가 한약제제로 통일되어 관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논란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한약제제, 생약제제, 천연물신약의 차이는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것은 동일하고 단지 한방원리에 따라, 서양의학적 입장에 따라, 새롭게 연구한 것이 다를 뿐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처방을 새롭게 연구하여 효능을 입증하면 한약제제가 아닌 천연물신약이 된다.

식약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전문과 일반 2분류인 의약품분류체계를 전문/일반/한의약품의 3분류로 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또 한편으로 ‘천연물의약품’이란 전혀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식약청 생약제제과에서 2011년 2월 25일에 발표된 보도자료를 보면 “천연물의약품 : 한방원리에 따라 개발된 한약제제 및 서양의학적 관점에서 개발된 생약제제를 포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한약정책과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식약청 내부에서조차 한약제제, 생약제제, 천연물제제에 대한 통일된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국가적 전략사업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은 2010년 10월 27일 ‘미래산업 선도기술 개발사업’ 중 하나로 전통의약을 기초로 천연물을 원료로 한 혁신 신약을 선정하고 2020년까지 10조원 매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약간 다르지만 삼성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 5공구에 복제약 R&D센터와 제조공장 건립에 2017년까지 총 2.1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하였고, 화이자, 릴리, GSK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천연물신약을 연구하거나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여기에 발 맞춰 식약청은 2010년 11월 1일 국내 천연물신약의 임상시험 진입 활성화를 위해 ‘생약·한약제제 비임상시험자료 제출기준’을 마련하여 천연물신약의 허가기준을 후보물질의 인체 사용경험에 따라 독성시험자료를 일부 면제하고 비임상자료를 3상 승인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국내에서도 천연물의약품에 대한 임상시험계획 승인건수가 ’08(8건), ’09년(15건), ’10년(22건)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지방분해, 기관지천식, 급성 및 만성 위염, 슬부 골관절염, 만성 간질환, 뇌졸중, 알쯔하이머병, ADHD, C형 간염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해 2상 및 3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기존 의사들의 처방 관행이 쉽게 변하기 어렵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제약시장은 천연물제제 시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마치 핸드폰이 아이폰으로 빠르게 대체되듯이 연구개발이 집중되고 있고 허가기준도 완화되어 조금의 시간만 흐르면 새로운 제품들이 등장할 것이다.

문제는 한의계다. 이러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홍삼으로 뺏긴 건강예방 한약시장에서 이제는 치료용 한약시장까지도 빠르게 잠식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한약제제와 생약제제의 헤게모니 논쟁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제3의 시장이 형성되고, 그 시장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

우리가 한약제제의 정의 속에 들어있는 ‘한방원리에 따라’를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정부 당국자와 약사, 의사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한 한의사는 한약제제만을 취급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5년에서 길어야 10년 내에 올 것이다. 과연 한의계가 한약제제란 용어를 포기하고 많은 부분을 한약사, 약사 또는 의사와 공유하면서 우리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 지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용신 / 서울 밝은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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