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73) - 禹吉龍(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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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73) - 禹吉龍(1896-?)
  • 승인 2011.02.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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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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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이 강한 한의사

 

 

1970년 12월 22일 11시에 부산시 서구 당부동 묘소에서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추모비 제막식이 1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 추모비는 1955년부터 12년간 부산시 한의사회의 회장을 역임한 禹吉龍 전 회장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추모비 건립을 위해 성금을 기탁한 인사는 100여명을 헤아렸다.

1955년 간행된 「東方醫藥」 釜山版에 따르면 禹吉龍은 울산출신의 덕망있는 명가에서 태어나 正養義塾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의학에 뜻을 품고 한의학자로 유명했던 應奇岩 선생의 문하에서 18세부터 5년간 수학하였다. 이후에 일본에 가서 한약종상, 침구사 시험 등을 수석으로 합격하고 甲子園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귀국하였다.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하여 한의학교육의 일선에서 부산동양의학전문학원(후에 동양의대와 합병)의 부원장으로 활약하였고, 한의사제도의 창립을 위해 尹武相, 李羽龍, 權義壽, 鄭源熹 등과 함께 五人同志會(韓國醫藥會 회원들)를 만들어 일선에서 발 벗고 나섰다.

1951년에 尹武相, 權義壽, 李羽龍, 鄭源熹 등 五人同志會의 회원들은 국회에 증언을 신청하여 國會社會保健分科委員會의 開會席上에서 증언을 하게 되었다. 이 때 禹吉龍은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東方醫藥」에서 그를 多辯을 좋아하지 않고 오직 실천만을 信條로 하는 無言實踐人으로서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의 온후한 성품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를 ‘正義感이 强한 醫士’라고 평하고 있다.

禹吉龍은 진료에 임함에도 左右手 寸關尺 脈狀을 처방전에 일일이 기재하고, 그 脈診原理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종합하여 정확한 病名을 진단하였다고 한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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