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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한의사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자
2011년 01월 13일 () 14:13:15 이충열 contributor@mjmedi.com

시평

지난 해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정부, 기업, NGO 등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이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 관한 가이드라인 ISO 26000을 제정해 발표했다. ISO 26000은 ‘기업조직의 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및 생태계’,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 등 7개 핵심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들 각각의 실행지침과 쟁점 해설,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제품의 규격, 기술표준을 제정하는 일을 주로 해 왔던 ISO가 사회적 책임에 관한 표준을 제안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내에서도 ISO 26000 제정에 발맞추어 각 기업들이 ‘윤리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는 이미 기업이 추구해야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개신교 NGO 단체인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 본부’에서도 ‘교회의 사회적 책임’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와 함께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2011년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필자는 한의계도 ‘사회적 책임’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되돌아보면 한약분쟁은 정부의 한의약 정책에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계기였다. 한약분쟁 해결을 위한 정부의 당근책에 의해 그 동안 한의계가 줄곧 정부에 요구해 오던 중요한 숙원사업들이 해결되었다. 보건복지부에 한방정책관실이 설치되었고, 국립 한의학연구원이 설립되었으며, 국가로부터 한의학 연구자금이 공급되었고, 전문의제도가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한의대 졸업생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사병으로 입대해야 했던 처지에서 벗어나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한의사는 명실상부 제도권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기득권 집단이 되었다. 7, 80년대 학번의 한의사들이 학창시절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정부 투쟁을 하면서 요구했던 것들이 대부분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기대하던 장밋빛 미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의학은 한약분쟁 이전보다 더 위축되고 있고, 한의사들이 개원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런 흐름이 한약분쟁을 기점으로, 한의학과 한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하락하는 현상과 함께 생겨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1951년 한의사 제도가 제정될 수 있었던 것, 한약분쟁 당시 누구도 힘들다고 보았던 약사들과의 투쟁에서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의학, 한의사의 배후에 든든한 원군이 되었던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한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이전처럼 따뜻하고 우호적이지 않다.

작년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부 한의사들의 모랄 해저드는 위험 수준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은 한의사를 기득권 계층으로 바라보면서 과거에 보여주었던 약자에 대한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 윤리성과 같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이런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의계가 제도권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만큼 더 높은 차원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라건대 2011년도는 한의사들이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충열 / 경원대 한의대 생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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