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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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한지
  • 승인 2003.04.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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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호흡하는 생명력 과시.
질기고 따뜻한 성품으로 생활용품에 활용.

옛 사람들은 '종이는 1000년을 살고, 비단은 500년을 산다'는 말로 좋은 종이의 생명력을 칭송했다.

이는 종이에 쓰여진 문자를 통해 우리의 수천년 역사가 이어졌으니 그 생명력을 1000년에 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언뜻 보기에 한지는 투박하기만 한 거친 종이로 보일 지 모른다. 특히나 매끈매끈한 표면을 가지고 있는 요사이의 洋紙에 비교하게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지의 매력은 연해보이면서도 질기고,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여기에는 서양종이가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따뜻함과 은은함이 흐른다. 또한 반투명한 한지는 채광·통풍·습도조절에도 그만이다.

따라서 한지는 여러 가지 실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쓰였는데, 정말 종이로 만든 것인가 의문이 갈 정도로 매우 튼튼한 물건들이 많다. 창문을 바르는 창호지를 비롯해 장판지로 쓰는 壯紙, 여성들의 사물을 담아 놓을 수 있는 각종 지함, 바구니, 신발, 의류, 주머니, 가구에 이르기까지….

이는 종이바탕에 옻칠이나 기름을 먹이는 방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대를 물려도 상하지 않을 만큼 견고할 뿐 아니라, 매우 가벼워서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또 벌레의 피해도 방지해 주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한지의 제조과정은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농한기인 11월에서 2월 사이에 닥을 채취하여 껍질을 벗기는데, 이때가 닥껍질의 섬유질이 잘 생성되어 있을 때이고, 닥껍질의 수분도 적당하여 껍질을 벗기기가 쉽기 때문이다.

산에서 베어온 닥나무를 커다란 솥에 넣고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가서 하루쯤 불린 다음 겉껍질을 벗겨내고 안쪽의 흰부분인 백피만 남긴다. 이 백피는 잿물을 넣어 푹 삶아서 흐르는 물에 10∼12시간 정도 담가둔다. 그런 후 질이 연해지면 참나무 방망이로 두들겨 잘게 부순다.

이 때에 주의할 점으로는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차고 깨끗한 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물은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온도가 높은 물은 닥의 섬유질을 삭게 하여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잘게 부순 닥나무 내피를 지통에 넣고 잘 풀어서 섬유질이 골고루 섞이게 한 후 여기에다 닥풀즙을 섞는다. 그런 다음 한지를 뜨는데, 한지 뜨기는 장방형의 대나무 발이나, 쇠머리풀 발을 발틀에 올려놓은 다음 발틀을 지통 속의 용액에 담가 전후좌우로 흔들면서 닥의 섬유질을 고르게 건져내는데, 지통 속에서 흔드는 횟수에 따라 종이의 두께도 달라진다.

건져낸 섬유질의 젖은 종이를 한 장씩 차례대로 모아 판자를 얹어 무거운 돌로 눌러서 물기를 빼고 말리면 노르스름한 한지가 된다. 게다가 치자 쑥 구기자 등을 물들인 색지는 현재 100여 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한지는 대개 동남아에서 수입한 닥나무를 원료로 하거나 우리 닥나무에 수입펄프를 섞어서 만든 것이어서 한지 특유의 재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펄프를 주원료로 하는 洋紙는 색깔이 희고 지면이 매끄러운 반면, 한지처럼 호흡하는 생명력은 찾아볼 수 없다. 한지는 닥나무를 두들겨 만들기 때문에 질기기 또한 양지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

겉으로 보아서는 전통방식대로 제조한 한지가 화공약품을 사용하여 만든 종이보다 투박하고 색깔이 깨끗하지 못하다. 거기다 기계로 제작한 것보다 값마저 비싸게 치이니 수지가 맞지 않아 지금은 충북 괴산 한지마을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몇 곳 되지 않는다.

화공약품을 사용하여 기계로 생산한 종이는 불에 태워보면 재가 꺼멓게 되어 아래로 처지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한지를 불에 태워보면 하얀 재가되어 공중으로 가볍게 올라가기 때문에 소지종이로 쓰는 데는 전통한지가 아니고서는 곤란하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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