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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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숯
  • 승인 2003.04.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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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탄생한 천연 방부제.
수없이 많은 구멍 형성, 물질 환원작용.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우리 조상들은 병균과의 전쟁에 어떻게 임했을까?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새끼를 꼬아만든 금줄에 숯 덩이를 끼워 대문 앞에 달아 놓았다. 다분히 미신적인 행위처럼 비춰지지만 거기에는 치밀한 계산이 베어있다.

즉 외부인에게 분만 사실을 알려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를 보호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 있다. 특히 숯에서 발생되는 음이온(-)은 부패성 미생물(질병)을 막는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으며, 실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기도 했다.

숯은 실제로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불순물을 잘 흡착시켜 물과 공기 등을 정화시키는 기능, 수분의 농도를 잘 조절하기 때문에 천연 방부제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전기를 잘 통하는 극성물질이기 때문에 수맥의 흐름을 원활히 도와주기도 한다. 어디 이 뿐이랴. 숯은 우리 몸에 해로운 곰팡이 균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물을 보관할 때 숯은 요긴하게 쓰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숯은 어떤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숯은 크기가 1000분의 1밀리미터 정도 되는 수없이 많은 구멍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은 구멍이 다른 물질을 환원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녹이 슨 철을 숯과 함께 가열하면 녹은 다 제거되고 다시 새 철로 변화된다. 탄소가 주변의 산소공급을 차단시켜 부패(산화)를 방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방부제의 기본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숯의 기능을 잘 알았던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반드시 숯과 소금을 넣었는데, 이는 숯의 내부표면을 이용한 흡착력이 부패를 방지하고, 물이나 공기정화에 적합하며, 목조건물의 결로방지와 조습제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 목판의 보관상태가 놀랍도록 완벽한 데에서도 입증된다. 습도조절기 등 어떤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많은 여름, 건조한 봄 등 언제나 적절한 습도가 조절된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과학의 첨단장비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이밖에도 한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백초상' '송인묵'이라 하여 숯을 '약'으로 써왔는데, '백초상'은 우리말로 '앉은 검정', 다시 말해서 솥 밑에 붙은 검은 그을음이고 '송인묵'은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으로 가정 상비약처럼 쓰였다.

이쯤 되면 숯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슬슬 궁금증이 도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 나무나 다 가져다가 그냥 불에 태우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빨간 불꽃으로 나무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열로써 나무의 형체를 그대로 둔 채 그 본 바탕만 태우고 불은 죽어버리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숯을 제조하는 과정은 꽤나 정성이 들어간다. 나무도 아무 나무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재질이 단단한 참나무 박달나무 등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무겁고 잘 부서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굵은 밑둥치가 숯가마의 천장쪽을 향하게 나무 심듯이 빼곡히 세워 놓고, 불을 붙여 숯감나무 전체에 불이 번지면 아궁이를 흙으로 막아버린다. 숯가마에 불을 지피고 나서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아궁이를 열게 되는데, 이때 공기가 들어가 새까만 숯덩이가 빨갛게 달아오르게 된다. 이처럼 빨간 덩어리들을 끄집어내 바로 흙으로 덮게 되는데, 이때 덮는 흙을 모답이라고 부른다.

모답을 해서 만든 숯을 '백탄'이라 하고, 숯가마 속에서 그대로 불기운을 죽인 것을 '검탄'이라고 한다. 백탄은 주로 가정용으로 쓰이며, 검탄은 공업용으로 쓰여왔다.

이처럼 유용하게 쓰였던 숯이 어느샌가 무분별한 벌목과 제조과정의 번거로움, 서양과학의 유입 등으로 인해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지금은 깊은 산골짜기에는 간혹 옛날에 숯을 굽던 가마가 있던 흔적만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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