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62)-朴勝九(1920-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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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62)-朴勝九(1920-1979)
  • 승인 2010.11.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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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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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회장 재임시 세계침구대회 치뤄

 

1973년은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다는 면에서 한의계에 특별한 해이다. 이 때 발표된 논문은 100여편이 넘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鍼灸學 뿐 아니라 藥物療法까지 총망라되어 있어서 한의학의 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당시 일간신문에서는 이 행사가 한국 전통의학의 부흥의 서막임을 전국민에게 알리고자 경쟁적으로 취재에 열을 올렸다. 본 행사의 논문초록집을 살펴보니 본 행사의 대회장이었던 박승구 당시 대한한의사협회장의 권두사〈네모사진〉가 눈에 띄었다.

 

 

“鍼灸療法은 東洋醫學으로서 數千年의 悠久한 傳統을 가져왔으며, 특히 우리 韓國에서는 民族醫學으로서 긴 歷史를 通해 大衆의 信賴속에서 治療效果를 發揮하였든 것이다. 第一次를 日本國에서 開催發足하여 다시 第二次를 佛蘭西 파리에서 盛大히 開催한 事實을 慶賀하는 바입니다. 이 大會를 繼續하여 第三次 世界鍼灸學術大會를 韓國에서 開催함을 여러 各國代表들과 같이 無限한 同慶의 기쁨을 禁하지 못하는 바이다. 今般 國際鍼灸大會에 二十四個의 外國으로부터 參席해주신 二百餘名과 國內 漢醫師 四百餘名中 貴重한 發表文을 抄錄함에 있어 全文을 다 收錄하지 못하고 制限된 紙面에 結論程度로 抄錄하게 된 것을 우선 謝過드리며 本抄錄에 揭載된 貴重한 發表內容은 參加하신 여러분들과 같이 將來 硏究를 거듭할 機會를 마련할까 합니다.”

호가 鳳悟인 朴勝九는 강원도 춘성군 출신으로서 1938년 경성제국대학 식물학 교습소를 수료하고 1948년 동양의대 1기로 입학하여 한의사의 뜻을 세웠다. 한의사가 된 후 1960년에 서울시한의사회 부회장, 1966년에는 경희대 한의대 강사, 1969년 서울시 한의사회 회장, 1972년 제12대 한의사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의계 정치의 일선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72년 한의사협회장으로 피선된 이후로 줄곧 다음해에 거행될 세계침구학술대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에 건너가 관계자들과 접촉하여 행사진행에 대해 협의하기도 하였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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