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 다툼… 결국 자원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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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 다툼… 결국 자원경쟁”
  • 승인 2010.11.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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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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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폴 U. 운슐트 독일 샤리테의대 교수(2)
폴 U. 운슐트 교수는 현재 베를린 샤리테 의대의 ‘중국 생명과학이론, 역사 및 윤리 연구소(Horst-Goertz-Institute for the Theory, History and Ethics of Chinese Life Sciences)’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제학술기구인 IASTAM(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raditional Asian Medicine)에서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과거 <Medicine in China> 시리즈를 집필하여 중국의학 이론사, 본초학사를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황제내경>, <난경> 등을 번역하여 서양에 소개하였고, <황제내경사전>을 펴내기도 했다. 폴 U. 운슐트와 특별대담은 2010년 10월1일 이뤄졌으며,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교수가 진행했다. 홍세영 한의사가 통역하고 대담 내용을 정리했다.

“직역 다툼… 결국 자원경쟁”
인재들 경제 사상 정치력 각 층위 알아야

특별대담: 폴 U. 운슐트 교수(2)

진행= 강연석 교수
통역‧정리= 홍세영 한의사 

운슐트(운): 그러나 한국 한의학은 유럽인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유럽에서 한국식 한의학을 시행하는 한국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의원도 드물다. 한국 한의학은 아직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의학도 마찬가지다. 한국 한의학이나 베트남의학과 같은 명칭은 역사학자를 위한 명칭일 뿐이다. 명칭은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로 분절적이다. 현재 중국의학은 강력하다. 인도의학도 권위가 있지만 인도의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생명과학을 뜻하는 ‘아유르베딕‘이라고 부른다. 아무도 이 모두를 통틀어 하나의 명칭으로 부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강연석(강): 현재 한국에서는 한‧양방의 집단 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로 임상의들 사이에서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의 갈등이 불거져 있다. 양방 의사들은 한의학을 인정하지 않는다. 두 의학이 공존할 수 있는 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중국의 모델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가?

운: 중국의 모델은 매우 분명하다. 중국은 백년 전에 서양 제국주의의 힘에 완전히 굴복했다. 정치인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지식인은 중국이 강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의 약점을 분석하는 것, 그리고 서양의 힘이 강력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기반이 현대과학과 과학기술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공산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동일한 프로그램을 지지했다. 중국에서 사용해온 세계관, 지금까지 자연 인간 질병을 설명해온 모델을 잊어버리자는 것이다. 현대화학, 물리학과 같은 서양의 과학, 논리,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다. 이것이 대강 90년 전에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시작되고 추진된 프로그램이다.

“현재 중의학은 중국에는 맞겠지만 다른 나라가 따를 모델은 전혀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전통이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들은 매우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전통이 그간 기여한 바는 찬미하되 과거는 이제 끝났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라고 선언했다. 이 두 전통을 천천히 결합시키는 일이 과제가 되었다. 중국 정부는 분자생물학 현대과학에 기반을 둔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오고 있다. 그 배경에 놓인 근본적인 생각은 바로 전통 중의학은 독자적인 전통으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점점 현대 생의학의 일부, 분자생물의학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태도는 매우 분명하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백년 전 서양의 힘에 철저히 패배한 그들의 경험에 기인한다. 언제나 중심이고자 했는데 패배의 상처를 맛보고 중화를 빼앗긴 그들은 ‘우리가 왜 약한가?’ 하는 깊숙한 자기 분석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음양오행을 분석해 보니 전기도 만들 수 없고 로켓을 한 치도 띄워 올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현대사회로 진입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음양오행이 필요치 않았다. 중국의 예가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중의학은 이처럼 그들의 특별한 정치적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델이 중국에는 맞겠지만 다른 나라가 따라야 할 모델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전혀 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것밖에는 모르다가 1860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의학과 과학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의 과학과 세계관을 서양의 것으로 대체했다. 과학은 물론 유익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과학은 전등도 밝혀주고 비행기 띄워준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일이백 년 열광했지만 과거의 또 다른 경험도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질병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동차를 수리하듯 기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전통적 방법론에 다가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비록 인증된 과학은 아닐지라도 의미 있는 방법과 불합리한 방법을 어떻게 구별해낼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과거에는 소수 과학자가 우리가 다 안다고 하면 모두 따라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환자들에게 그들이 믿지 않는 방법을 강요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이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질병 치료에는 자동차 수리하듯 기계적 방식뿐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다”


문제는 구조이다. 예를 들어 독일은 포괄적인 의료보험을 시행한 최초의 국가이다. 독일에서는 모두 강제적으로 매월 15%의 세금을 건강보험료로 낸다. 나는 이 돈이 오직 의학적 치료에만 지불되기를 원한다. 즉, 모두가 믿는 치료에 말이다. 소비가 의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구리반지를 침대 밑에 놓아서 하늘의 기운을 받아 건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술이라면 나는 그 돈을 대주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이중의 지불체계를 주장한다.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의료를 위한 재정이고 또 하나는 소규모 그룹을 위한 재정으로 따로 마련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법에 지불하도록 하면 된다. 정부의 의무는 두 가지다. 누구라도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강요받아선 안된다. 자신이 낸 보험료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치료법에 지불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체의학이나 전통의학과 같은 종류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치료의 기회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중국 모델 얘기를 하다 말았는데, 중국 모델은 과학의 지배에 맞추어져 있다. 전통에서도 과학적 부분만 인정한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은 전통이며 현대적 의미의 과학적 기반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끝났다’고 선언하여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점진적으로 전이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의학교육이 과학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형외과 병원에서 시행되는 95%의 시술은 관습적인 것으로서 과학으로 규정되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과학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9세기 말 이후 20세기까지 독일은 약초들을 분석해 왔다. 이제는 대부분의 활성성분이 알려져 있다. 약초를 사용할 때는 화학적 지식을 통해 얻은 활성성분에 근거하여 사용한다. 더 이상 약초를 전통적인 의미, 혹은 고대 그리스의학에서의 사고방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학교에선 과학을 강조하지만 독일 정형외과에서 시행되는 95%의 시술은 관습에 의존하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현대의학으로 갈 것인지 동종요법으로 갈 것인지, 중의학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할 자유가 주어진다. 이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여기만 가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가장 최선의 지불방식인지 도출해야 한다. 현재 한국처럼 한‧양방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의료시스템은 매우 생소하게 여겨진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은 모두 은유에 기반하여 성립되었다. 아무도 완전한 진실을 갖고 있지 않다. 전통에 집중하는 인력과 현대의학에 집중하는 인력을 각자 두는 것은 좋지만, 대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완전히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은 우리 상황과는 다르다.

강: 한의학 공부하는 학생들은 양방의학을 많이 배운다. 서양의학도들도 졸업 전에 한의학을 배우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마련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성립되고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기초한 연구들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임상에 있어서는 두 시스템이 첨예하게 분리되어 있다. 교육적 관점에서는 당신 말대로 하고 있지만 매일의 임상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운슐트 교수가 제천국제한방엑스포의 의사학국제학술대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운: 독일에는 두 개의 층이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은 현대의학을 잘 알아야 하며 그들이 원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침술이나 캄포나 동종요법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사용해도 된다. 환자들이 비용 부담을 걱정해야 하지만 어쨌든 의사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의사의 밑에는 치유임상가라 불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현대의학을 교육받지는 않았으나 인체의 형태학에 관해 숙지하고 있으며 인체에 무엇이 해가 되는지 알고 있다. 자신들이 행하는 치료가 공격적인 치료가 아니고, 감염을 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이든 사용할 수 있다. 의사들의 영역인 현대의학을 시술하지 못할 뿐, 중의학이든 인도의학이든 전통 유럽의학이든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

당신이 독일에서 병이 난다면 의사에게 가도 되고 치유임상가에게 가도 된다. 내가 18세일 때 복통이 심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치유임상가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홍채 진단을 통해 비장종양이 있다며 의사에게 가도록 권했다. 시스템이 이렇다. 그는 내 병의 심각성을 알았고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내 고통을 연장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양자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독일의 시스템은 다행히도 원하는 치료법을 찾아갈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준다. 이상적인 해결책은 없다. 각 나라마다 독특한 역사적 상황이 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서로 배치되는 이익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모두 완전한 진실을 갖고 있어 대화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강: 한국에서는 한의학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의학의 표준화에 대한 논의도 오가고 있다. 이 세계화나 표준화는 한의학에 일정 부분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의학을 왜곡시키거나 많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여기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운: 왜 세계화하려고 하는가? 세계화는 경제용어이다. 세계화의 의미는 자국의 생산자가 자신의 상품을 자국에서 팔기 어려울 때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유르베다 의학산업을 통해 인도인들은 상품을 전 세계에 팔고자 한다. 이것이 세계화가 기여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문제다. 한의학 상품을 미국이나 유럽에 판다고 하면 세계화이다.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상을 퍼뜨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과연 왜 자국의 의학사상을 퍼뜨리고 싶어 하는가? 이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만약 내 책에 써 놓은 내용을 믿는다면 의학은 카메라나 차처럼 생산되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의학은 항상 머리와 마음에 관계된 것이다. 아유르베다 의학을 캘리포니아에 팔려면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아유르베다 의학에 기반한 생각을 심어야 한다.

만약 한의학 상품을 팔고자 하지 않는다면, 오직 이론만 퍼뜨리고자 한다면, 당신들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적 사고가 다른 것보다 좋다는 생각을 퍼트리는 선교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누가 선교사들에게 돈을 지불하는가? 만약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왜 서양의 선교사들이 19세기에 한국이나 중국에 갔겠는가? 그들은 서양의 사고방식, 서양의 상품을 받아들이기 쉬운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 갔다. 만약 한국적 의학사상을 유럽이나 아프리카 대중에게 퍼뜨리고자 한다면, 그 목적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강: 마지막으로 한국의 한의사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한다.

운: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알지는 못한다. 어느 나라든 복잡한 상황을 갖고 있게 마련인데, 대부분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싸움이다. 정부가 연구비를 나눠주고 연구소를 지을 돈을 주는데 누가 더 많이 가져가고 누가 덜 가져가느냐 하는 순수한 자원 경쟁의 문제다. 이것은 세계관 간의 경쟁이기도 하다. 한의사는 자신의 경험으로 한의학이 잘 듣고 많은 환자를 만족시킬 수 있음을 안다. 이러한 지식과 경험에 기초하여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 이것이 위협받고 있으니 매우 복잡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경제, 세계관, 사상, 정치적 설득이라는 각각의 층위에서 인재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경제적인 면만 생각해서도 안되고 세계관만 가지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모든 층위를 다 알아야 한다.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워라. 심오한 내용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강: 인상적인 말씀 감사드린다. 한국에서 좋은 시간 갖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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