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폴 U. 운슐트 독일 샤리테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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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폴 U. 운슐트 독일 샤리테 의대 교수
  • 승인 2010.10.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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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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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아직도 있느냐”
폴 U. 운슐트 교수는 현재 베를린 샤리테 의대의 ‘중국 생명과학이론, 역사 및 윤리 연구소(Horst-Goertz-Institute for the Theory, History and Ethics of Chinese Life Sciences)’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제학술기구인 IASTAM(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raditional Asian Medicine)에서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과거 <Medicine in China> 시리즈를 집필하여 중국의학 이론사, 본초학사를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황제내경>, <난경> 등을 번역하여 서양에 소개하였고, <황제내경사전>을 펴내기도 했다. 폴 U. 운슐트와 특별대담은 2010년 10월1일 이뤄졌으며,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교수가 진행했다. 홍세영 한의사가 통역하고 대담 내용을 정리했다.


“막걸리 아직도 있느냐”
40년만의 내한… 한국 추억 애틋해

특별대담: 폴 U. 운슐트 교수(1) 


운슐트 교수는 1970년 10월에 방문한 이래 정확히 40년만의 한국 방문이라고 했다. 한국에 아직도 막걸리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운슐트 교수는 준비해온 발표자료에서 40년 전 쵤영한 한국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시골마을의 아담한 초가집과 교복을 입은 싱싱한 청년들, 남대문 사진 등을 볼 수 있었다.

강연석(강): 이번에 당신의 최근 저서인 <의학이란 무엇인가-동서양 치유의 역사>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간단한 소감과 최근의 연구와 근황을 말씀해 달라.

운술트(운): 한국에서 책이 발간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Medicine in China>가 많이 알려진 책이기는 하지만 30년 전의 생각에 갇혀 있는 책이다. <의학이란 무엇인가>는 보다 발전되고 변화된 나의 고민과 연구성과를 담고 있으며, 이 책을 한국어로 전달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달 말경에 황제내경 소문의 주석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그간의 수많은 황제내경 주석서들을 참고하여 10년에 걸쳐 완성한 책이다. 과거에 황제내경 소문을 출간했는데, 이 책의 소개서 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고문헌에 대한 연구를 수년 째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수집한 중국의 고서가 900여 종이 된다. 몇 십 년에 걸쳐 중국을 오가면서 직접 수집한 자료들인데, 인쇄본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흥미로운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내년 2월 경에 900여 종 문헌에 대한 해제 작업 결과물이 출간될 예정이다. 2천 페이지 분량으로 나올 것 같다.

중국에는 과거 의원들이 직접 적은 필사본들이 많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가들의 의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면 낙태하는 방법만 해도 의서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필사본에는 다양한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문헌은 돈을 벌기 위해 환자를 속이는 법에 대한 내용까지도 나온다. 근사한 겉모습이 아닌 그 이면까지도 확인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중의학은 점점 현대 생의학, 분자생물학의 일부가 되어간다”

강: 이번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식을 조직하면서 학술발표대회에 주연사로 초청을 하였다. 강연 준비과정에서 어떠한 생각이 들었는가?

운슐트 교수가 제천국제한방엑스포의 의사학국제학술대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운: 2~3주 전, 독일의 두 주요 일간지에서 전통의학, 즉 독일의 전통의학의 부활 움직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비과학이 다시 대두되어야 하는가, 왜 대학에서 전통의학을 위한 연구소들을 설립하려 하는가” 하는 비판이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국의사학회 측으로부터 한국적 상황을 충분히 전달받으면서 준비를 하였다. 한국의 상황을 중심에 놓기는 했지만 위와 같은 비슷한 독일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준비를 하였다.

강: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통일된 영어 명칭을 ‘oriental medicine’(동양의학)으로 하고 있지만, ‘Korean medicine’(한의학), ‘Traditional Korean medicine’(한국전통의학), ‘Eastern medicine'(동의학) 등 각 단체나 개인마다 서로 다른 명칭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전통의학을 연구해온 학자로서 한국의 전통의학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 어떠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여기는가?

운: 한국인이 아닌 나와 같은 이방인이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은 독일과 매우 유사한 상황들을 갖고 있다. 분단도 그러하고, 의학의 도입과 발전도 그러하며, 전통과 현대가 대립하는 현실도 유사하다. 독일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 자신만의 생각과 발전된 내용을 그리스로부터 받은 영향력에 덧붙였다. 독일의학이라고 한다면 독일에서는 외국, 즉 고대 그리스나 지중해 연안에서 온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리스의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므로 그냥 ‘의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독일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명칭을 통해 구별할 필요는 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중국을 비롯한 외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 한국 역시 강력한 국가였음에는 틀림없지만 언제나 이웃 나라와의 상호관계가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명칭을 정하는 문제는 역사적인 문제에 국한되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명칭은 한국의 창조성을 얼마나 강조할 것인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의사학자라면 한, 중, 일에 공통되는 전통과 별개로 한국이 보유한 독자적 전통을 확인시켜 주는 자료를 한의계의 정치적 결정권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몇 달 전에 한국, 일본, 중국의 전통의학 대표자들과 함께 홍콩에서 WHO 모임을 가졌다. 질병 명칭에 대한 영어 번역을 통일하고자 하는 모임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웃음). 동아시아의 삼국은 각자 자신만의 독자성을 만들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의 공통된 기반에 바탕을 둔 공통 명칭을 붙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중의학이라 부르고 싶고 일본인들은 캄포라 부르지만 결국 중국의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창의적이지만 외부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니 결국 뭐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외부인이나 역사학자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독자적인 창의성을 얼마나 부각시킬 것이냐 하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결정한다.

“중국에는 필사본 의서가 많다. 낙태하는 방법 등 중의학 이면까지 확인할 수 있다”


강: 현 공식 명칭인 'Oriental Medicine'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한다. 많은 이가 이 명칭이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orient'라는 의미가 중동을 뜻하고, 다분히 비하하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바꾸고 싶어 한다(본지 689호 2008년 12월5일 폴커 샤이드 교수와 대화② 참조).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미 오랜 기간 사용해온 것이며, 일반화된 명칭이라며 변경에 반대한다.

운: 개인적으로는 이 용어를 선택하지 않겠다. 유럽에서 오리엔트는 터키나 페르시아를 말한다. 베트남이나 중국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 개념이다. 오리엔트는 근동이나 중동을 가리키는 매우 오래된 개념이다. 그 내용물이 아니라 지역에 기초한 명칭은 문제가 있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 가지 차이는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은 관계의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고, 서양은 분석과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은 명확한 규정이 사실상 어려우므로 명칭으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동양이든 동아시아든 이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기준으로 삼은 명칭이다. 동아시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국가 이름도 붙이기 어렵다. 국경은 의미가 없다. 한국. 일본. 중국의학이라는 이름은 의미가 없다. 한국의 전통의학을 살펴본다면, 일부는 순수하게 한국적이겠지만 몽고의 영향, 불교의 영향 등 수많은 기원을 가질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필요가 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명칭이 설득력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명칭 문제는 정치적이다. 한국의 창조성을 얼마나 강조할 것인가, 그것이 기준이 돼야”


강: 한중일 의학을 통칭하는 의학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러한 이유로 'Oriental Medicine'을 쓰자는 얘기도 있다.

운: 그렇게 모두를 아우르는 명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각국은 모두 하나의 공통 기반을 갖고 있다. 음양을 믿는다면 말이다. 그 근원을 알 수는 없지만 여기에 각자의 창의성을 덧붙여 발전시켰다. 캄포는 유럽에 잘 알려져 있고 전통 일본의학, 혹은 캄포라 불린다. 중국의학은 그냥 전통중국의학, 즉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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