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58)- 田錫鵬1911-1993)
상태바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58)- 田錫鵬1911-1993)
  • 승인 2010.10.28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contributor@http://


부친 뜻에 조직 강화 솔선한 경기도한의사회장

전석붕 별세 관련 기사.
1957년 1월에 간행된 <東方醫藥> 3권 1호에는 ‘丁酉新年의 所感’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希望과 光明에 가득 찬 丁酉新年에는 지난 丙申年에 前轢을 다시 밟지 말고 우리 先輩 諸位들과 새로운 精神으로 强鐵같이 大同團結하여 互相批判하고 相互激勵하며 協助精神을 높이여 반드시 새해에는 悠久한 東洋醫學 歷史를 基盤으로 하는 새로운 歷史의 한 페-지를 期必코 新起源할 것과 우리의 組織體를 加一層 强化하는 한편 國民保健 向上을 爲하야 새 希望과 새 勇氣로 새로운 實踐을 全國 漢醫藥界 人士들과 더불어 다음에 課業를 期約하고 盟誓합시다.”

이 글은 구한말 동제의학교 교수를 지낸 田光玉(1871~1945)의 아들인 田錫鵬이 쓴 글로 당시 한의사회의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글이다. 田錫鵬은 경기도한의사회의 초대 및 2대, 3대 회장과 중앙회 부회장을 역임한 한의계 지도자였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면서 대민진료에 임하였고 경기도한의사회의 회장과 중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의사회 조직화에 앞장 섰다. 그는 열혈적인 성품과 투사적인 기질로 침구사법 부활 저지에 힘을 기울여 이를 지속적으로 관철해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부친 田光玉은 근현대 한의학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손꼽힌다. 田光玉은 天性이 溫厚하며 체격이 장대하여 겉모습에 위엄이 있었다. 四書三經을 숙독한 후에 모든 醫書를 精硏하여 諸書에 博通하였고, 종교, 철학, 시대, 과학 등 모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일어나서는 十二段錦導引法을 運行하여 하루를 시작하였고,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고완경, 화엄경 등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田錫鵬은 이러한 부친의 학문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의사회의 조직화에 역점을 둔 것이다. 田錫鵬은 1955년 창간된 <東洋醫藥>의 편집인으로서 창간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는 창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文化는 進步되고 時代는 變遷된다. 仙家, 佛家, 諸家百說이 敷衍曲解해 놓은 自家偏論에 迷惑해서 科學者의 嘲笑를 받지 말고 古今을 通하야 眞正한 原理와 深奧한 妙術을 찾아 現時代에 背馳않게 되는 體系를 세워 東西洋 어디 가든지 容喙批評이 없이 當當한 學問이 되어야 하겠다. 目下 모든 情勢로 보아 우리 漢醫師의 聯絡團結도 必要하고、大學 學術院의 高等硏究도 要請된다. 여기서 第一 急先務로 機關紙가 必要하야 여러 先輩 指導 下에 盡心周旋해 오던 中 當局의 深厚한 同情이 있어 發行 許可를 얻어 只今 刊行케 되였다.……우리의 오랫안의 宿願을 이제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분은 이 機會 이 機關을 利用하야 硏究에 硏究를 加해서 우리 漢醫學을 世界에 내놓아 자랑거리가 되게 하기를 懇望하면서 祝辭의 두어자 올린다.”

田錫鵬의 글 속에서 그의 새로운 의학의 창출, 한의사들의 대동단결, 연구기관의 제고, <東洋醫藥>誌의 시대적 역할 등에 대한 포부를 느낄 수 있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