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57)- 裵元植(191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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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57)- 裵元植(1914-2006)
  • 승인 2010.10.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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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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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국제화에 한몸 바친 巨木


裵元植 先生은 근현대 한의학의 대명사이다. 몇 개의 단어로 집약하여 표현해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는 수많은 업적을 이루어 내었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현재에도 후배 한의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고, 그의 업적들은 한의계 인프라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1914년 경남 진해에서 출생한 裵元植은 1934년 20대 초반에 평양 기성의학강습소에서 한의학 공부를 하면서 한의사의 뜻을 세우게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그는 부친의 친구인 김민구에게서 <의학입문>을 지도받게 된다. 주위의 권유로 만주의 長春으로 간 후로 한의학 연구를 거듭하였고, 해방 후 귀국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이후로 1952년에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인 서울한의과대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한의학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긴 것은 이 무렵이다. 1954년 한의학 학술잡지인 <의림>을 창간한 것이다. 학술지로서 성격을 띤 이 잡지는 이후로 한의계의 학술동향과 현안 등을 토론하는 학술의 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된다.

그의 한의학 발전을 위한 활동은 연이어진다. 1956년에는 동방의학회 회장, 1960년에는 동방장학회 회장, 1968년에는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연임) 등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을 학문적, 정치적으로 선두에서 진두지휘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각종 단체의 회장으로의 활동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한의학을 비하하는 이슈거리가 등장할 때마다 이에 안분하지 않고 그 부당성을 주장하는 일에도 솔선하였다. 1955년 腦炎論爭이 그것이다.

1955년 9월19일 동아일보에 양의사 朴殷永이 “腦炎管見-病毒素排泄로 治愈될 수 있다”는 글에서 한약으로 腦炎을 치료하여 높은 치료율을 얻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자 洋醫師 姜成烈은 이에 반박하는 “科學的 立證 없는 漢方”(부제: 朴殷永씨의 “腦炎治癒될 수 있다”를 駁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여 朴殷永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이에 裵元植은 1955년 9월28일자와 29일자 동아일보에 “漢醫學理上의 腦炎 檢討”(부제: “朴殷永氏所論을 敷衍하면서 姜成烈氏 駁文에 答함”)를 연달아 게재하여 姜成烈의 한의학 비판에 반론을 제기하였다.

왕성한 활동력으로 한의학 발전에 촉매가 되는 일들을 해낸다. 그의 업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아마도 제3회 국제침구학술대회의 유치를 성사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1964년 10월 裵元植은 日本 東京으로 건너가 다음해에 개최 예정인 제1차 國際鍼灸學會의 大會 組織部長인 木下晴都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국 측 한의사를 초청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이듬해인 1965년 10월18일 제1회 대회에 權度沅, 秦泰俊 등과 함께 초청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차 大會에 崔鎭昌, 李貞圭, 李昌彬 3인이 대표로 참여하여 차기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배원식은 1976년에 일본동아의학협회 고문, 제1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 대회장, 1999년에는 국제동양의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게 된다. 2006년 1월19일 공개된 裵元植의 遺訓은 아래와 같다.

“斯學同人 여러분 弟는 먼저 갑니다. 諸彦님들은 끊임없이 韓醫學 發展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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