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감독들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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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 감독들 직업병
  • 승인 2010.10.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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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철

하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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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의 한방스포츠학(24)
그라운드의 한방스포츠학(24)

화병, 감독들 직업병

장기나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훈수를 두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선수 출신 감독들이 경기장이나 운동의 현장에서 지도할 경우 선수들보다 게임의 흐름을 잘 잡고 게임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갖고 있어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집어내는 경우가 많다.

배구의 경우 선수들은 분석관을 통해 얻은 상대편의 공격 패턴과 공격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역할을 종종 잊거나 상대 선수들이 다른 패턴을 갖고 시합을 하는 경우, 우왕좌왕 하거나 자신 있게 공격과 수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감독은 자신의 직감과 공격, 수비 라인을 재정비하려고 작전시간을 이용하거나 경기 중에 구두지시나 사인을 주게 된다.

하지만 선수들이 집중력이 저하되어 있거나 자신의 고집을 밀고 간다면 감독으로서도 속수무책인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감독이 A라는 상대 공격수가 스파이크를 매길 때 대각선 공격이 많으니 블로킹도 그 쪽을 주로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막상 그 선수가 직선으로 공격을 몇 번 성공시키면 수비하는 선수는 통계적인 대각선 블로킹보다 직선 블로킹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은 이때 속칭 열을 받게 된다. 또 연습 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브나 수비를 해내는 선수가 실제 경기에 들어가면 허당 플레이를 하는 경우 감독의 속은 점점 타들어 간다. 다 이겨 놓은 경기를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보다 자신들의 에러 때문에 역전패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듀스까지 가는 시소 경기를 치르는 도중에 감독들은 선수들 못지 않게 입술이 마르거나 눈이 충혈되는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나 경기 후 소변을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게 된다. 감독 자신이 구상했던 것과 다른 플레이를 하고 그 결과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감독의 마음은 속이 터지다 못해 화산 분출과 같은 심정이 된다.

그런데도 감정을 선수들에게 이입시키지 않으려 혼자 삭이는 것을 보며 고독한 승부사가 되기 위해선 감독이라는 직업은 화병(火病)도 이겨내야 하는 고된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 환자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이 병은 표출이나 자신의 감정 표현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에게 자주 볼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하상철/ 대한스포츠한의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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