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55) 魯炳熹(1850~1918)와 趙鍾大(1873~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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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55) 魯炳熹(1850~1918)와 趙鍾大(1873~1922)
  • 승인 2010.10.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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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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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저항했던 한의사들(1)


노병희의 문집 <호정유고>.
일제가 한국의 강토를 점령해 들어오면서 민중의 저항은 시작되었다.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무장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들은 공분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는 구한말 이후 일제시대에 걸쳐 일제에 저항한 한의사들의 족적을 찾아내어 그들의 공로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주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펼친 인물 가운데 노병희와 조종대가 있다. 이들은 모두 한의학을 전문으로 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일제에 항거하는 방안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노병희는 본관이 咸平이며 자가 明仲, 호는 壺亭으로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다. 그는 魯周相의 장남으로서 1888년부터 1893년까지 大儒 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구한말에 그는 궁중에서 각종 치료활동을 하였다. 1904년 영친왕을 진료한 후로 6품 承訓郞에서 정3품 通政大夫가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치료술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의관으로서 활동에만 만족하고 궁중에서 안분자족할 수 없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의 체결로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략하고만 것이다.

노병희가 일제에 항거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다. 1906년 3월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 뒤 군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노병희는 최익현 휘하의 醫官으로 활약하면서 谷城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이해에 그는 대마도로 유배되었고 이때 단식을 하여 병을 얻은 최익현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그는 사후인 1980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또 다른 인물로 조종대(趙鍾大)가 있다. 조종대는 황해도 금천 사람으로서 한의사로 활동한 사람이다. 그는 1919년 己未獨立運動時 江原道대표로 선출되었고, 그해 8월 조직된 鐵原愛國靑年團을 조직하여 원주·횡성·강릉·양양·금화 등 강원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조직 확대에 힘을 쏟았다. 그는 강원도에서 독립을 위한 활동을 위해 자금과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것으로 인하여 그는 일제의 주시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일제의 행정기관을 마비시키기 위한 각종 책략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1920년 초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3년에는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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