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너리티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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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9.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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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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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집단 강성 귀족노조화 도모
시평- 마의너리티리포트 

일전에 <마의너리티리포트>란 책을 보게 되었다. 소수 의사의 의견이란 취지에서 ‘마이너리티리포트’와 유사한 ‘마의너리티리포트’란 제목을 달았다 한다. 닥터 K(김장용)란 개원의가 지은 만화 형식의 책이다. 만화 형식인데다 어려운 내용을 다룬 책이 아니므로 일독을 권한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나 ‘디시인사이드(카툰-연재 갤러리)’ 웹사이트에도 이 책의 일부 내용이 실려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쯤 찾아보시기 바란다.

마치 광고하듯 소개했지만, 뭐 큰 가치가 있어 소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1/3 이상은 한의학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에 할애되어 있다. 한 편 한 편의 내용이 한의사 입장에서는 말문이 막힐 어처구니 없는 폄하 일색의 내용이다. 허준 선생을 암시하는 ‘허중이’가 책 전편에서 주인공 K의사의 바보 같은 상대 역으로 나오는 것이나 한의사가 간호사에게 원색적 욕을 들으며 얻어맞아야만 하는(192쪽) 등의 설정은 만화책이니 예외로 봐줄 수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진지하게 논할 주제에 대해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수준의 주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일원화 방안으로 내놓은 안이란 것이 의사에게는 한방의료를 허용하고 한의사는 ‘한방사’로 격하하여 자연도태를 시키자는 식(283쪽)이고, 정부가 한의대를 인가한 것이 로비에 힘입은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등(266쪽. 물증은 없으니 시비 걸지 말라고 적으며) 갖가지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직설적 욕구 표출에 지나지 않는 불합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의사집단 강성 귀족노조화 도모
한의계, 앵무새 같이 따라할지도


헌데 이 책의 원래 주제는 한의학 비판이 아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그들의 수익구조와 노동환경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항변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따라서 이 책의 2/3는 의료수가의 저평가라든가 의료 통제방식의 부당성에 대해 그들의 주장을 피력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뻔하다.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대접받아야 하며 의료의 가격과 시장구조는 자신들이 만들어 가야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의료체제가 공산주의라고 비판하지만 내게는 의사 집단을 일종의 강성 귀족노조로 만들려는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의사사회에서 이런 주장은 소수(마이너리티)의 ‘가난한’ 의사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대다수 구성원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의사 사회의 입장이다. 책의 1/3에 대해서는 그 오류를 간파하는 혜안을 드러내면서도 나머지 2/3에 대해서는 그들과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게 되지는 않을는지. 한의계에도 빈의협(貧醫協)이란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은 ‘한의쉼터’란 이름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5천명이나 되는 한의사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주변에서 가난한 한의사를 본 적이 없지만 ‘빈의’란 말을 들으면 왠지 전문인의 독점적 이익을 옹호하겠다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한의사가 있다면 <마의너리티리포트>를 읽고 타산지석을 얻기 바란다. 그런데 이쯤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밥그릇 지키기가 나쁜 것이냐고.

그렇다. 밥그릇 싸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왕 밥그릇 싸움을 하려 한다면 그들보다는 좀 멋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와 미래를 헤아리지 못한 노골적 욕구의 표출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결국 우리의 밥그릇마저 찌그러뜨리고 말 것이다.

김기왕/ 부산대 한의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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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정 2010-09-21 03:53:44
교수님같은 발전적 내부 비판자가 10명만 더 계셨어도 한국 한의계 자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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