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내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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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내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 승인 2010.09.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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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승

장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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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위해선 용어 재정립 우선해야
시평- 한의계 내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최근 베스트셀러 중 가장 눈에 띄는 서적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정의(justice)라는 단어에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자체도 재미있지만 이런 철학적 함의를 가진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함부로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정의를 갈망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내면에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신문 지면을 뜨겁게 했던 ‘전녀위남’ 역시 그 속에는 한의계 내부의 불신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상을 주로 하고 고전을 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해왔던 한의사 그룹과 대학 내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 그룹 간의 불신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최근 생긴 각종 학파나 임상학회들끼리도 불신의 골이 느껴진다. 한의사 모두 지적․정신적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한의학계 내부에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떤 학회든 학파그룹이든 개인이든 주장과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이 건전한 학문적 과정을 거치면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학문적 과정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불신을 종식하고 건전한 토론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과 투명성이 필요하다. 무슨 주장을 하든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립 없이는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다.

불신 없애려면 소통과 투명성 필요
소통 위해선 용어 재정립 우선해야


우선 한의계에서 사용하는 불명확한 한자용어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한글이라 할지라도 불명확한 표현들을 좀 더 명확한 용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風’, '濕'과 같은 기본용어뿐 아니라 ‘口渴’, ‘腰痛’과 같은 증상들도 분명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동의보감 같은 곳에 잘 정리돼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과학적 지식도 널리 알려져 있고 단체나 개인마다 표현 범위나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용어의 표준화 이전에 용어 자체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임상학회에서 각종 의안을 발표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아직도 모호한 표현이나 용어가 산재해 있지만 비난이 아닌 상호 비판을 해서 좀 더 용어가 다듬어지면 한의계의 소통구조도 더 나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또 다른 큰 문제는 돈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연구는 자본과 인력이 필요하다. 한의계 역시 용어 정립이나 연구내용이 다양해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본의 문제가 깔려있다.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진은 그 분야가 임상이든 기초이든 간에 한의사들의 입장보다는 연구비 지원해 주는 곳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다.

연구비 자체도 미진하지만 연구비가 현장에서 배분되거나 집행될 때 다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한의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와 연구진, 예산과 현실 가능성, 이 모든 걸 조정해줄 공간이 필요하다. 학회와 협회, 대학, 한의학연구원 모두가 참여해 1~2년에 한 번씩 다빈도 질환 2~3 가지에 대한 임상지침서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병명에 대한 정의, 진단방법, 치료방법, 예후 모든 것을 갖춘 임상지침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임상학회나 학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것을 진행하면서 연구거리가 될만한 것들을 정리해서 이후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하면 자연스런 소통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장욱승/ 용정경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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