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52)- 趙憲泳(190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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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52)- 趙憲泳(1900~1988)
  • 승인 2010.09.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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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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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 한의학’ 확산 위해 노력

조헌영.  
일제 시기에 한의학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각종 학술활동을 전개한 趙憲泳은 한국의 한의계를 대표하는 인물다. 趙憲泳은 1900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日本 早稻田大學 사법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재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학우회장, 신간회 동경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운동을 하기도 하였고, 1935년에는 조선어학회 표준말 사정위원, 큰사전 편찬전문위원, 1945년에는 임시정부 및 연합군환영준비위원회 사무차장 등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조헌영의 총명함은 金永勳(1882~1974)에 의해서도 증언되는 바이다. 金永勳의 제자 李鍾馨이 지은 <晴崗醫鑑>에는 金永勳이 趙憲泳을 만났을 때의 기억을 적고 있는데, 여기에서 趙憲泳을 다음과 같이 추억하였다.

“30代의 이 靑年은 東醫學에 대하여 매우 造詣가 깊었고, 특히 그의 說明하는 論理가 매우 現代的이어서 先生(金永勳을 말함)으로서도 단번에 귀가 트일 정도로 感銘이 되었다. 그의 陰陽論에 대한 現代的 解釋이라든지 東醫治療方法의 科學的 說明이라든지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는 確固한 主觀과 理智力을 그는 갖고 있었다. 우리 東醫界에 이처럼 보배스런 人物은 일찍이 만나 본 일이 없었다. 先生은 홀딱 반할 정도로 親熟해졌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면 밤이 새는 줄 모르도록 快哉를 불렀다.”

趙憲泳은 해방 후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의 제도권 진입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지만, 1950년 6.25전쟁 기간에 납북되고 말았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의과대학 동의학부에서 교수를 역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한의학 연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저술로는 <通俗漢醫學原論>, <民衆醫術 理療法>, <肺病治療法>, <神經衰弱症治療法>, <胃腸病治療法>, <婦人病治療法>, <小兒病治療法> 등 다양하다.

‘통속 한의학’ 확산 위해 노력
東西醫學 比較論도 집중 연구


그는 특히 1930년대 조선일보 지면에 장기간 벌어진 한의학 부흥 논쟁의 중심에서 한의학 부흥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일보를 통해 당시 양의사인 張基茂, 鄭槿陽, 약사 李乙浩 등이 제기한 한의학에 대한 견해들을 내용에 따라 찬동을 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여 한의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유도해 내기도 하였다. 이 논쟁은 해방 후 1947년 <漢醫學의 批判과 解說>이라는 제목의 서적으로 한데 모아져 출간되었다.

趙憲泳의 학문세계는 그의 책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통속 한의학’이란 단어로 집약된다. ‘통속 한의학’이란 “大衆醫療에 가장 貢獻이 많고 偉大한 功效가 있는 漢醫學이 날로 衰頹해 가는 것이 愛惜하고 憂慮되어 그 復興에 微力을 보태고자” 제가한 신조어이다. 1936년 *월18일에 東西醫學硏究會 주최 東亞日報 후원으로 趙憲泳이 金永勳, 申佶求 등과 함께 강사로 나서서 ‘通俗漢醫學講演會’를 갖게 된 것도 ‘통속 한의학’의 확산을 위한 그의 노력의 하나이다.

‘東西醫學 比較論’도 그의 중요한 테제이다. 1934년 간행된 <通俗漢醫學原論>에는 그의 동서의학 비교론을 집약해 놓은 글이 들어있다. 그가 제시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상대적 특징은 綜合醫療와 局所處置 醫術, 自然療法 醫術과 人工治療 醫術, 現象醫學과 組織醫學, 靜體醫學과 動體醫學, 治本醫學과 治標醫學, 養生醫術과 防禦醫術, 內科醫學과 外科醫學, 應變主義와 劃一主義, 平民醫術과 貴族醫術, 民用醫術과 官用醫術이다. 그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 서양의학의 장점은 취하고 한의학의 우수한 점을 부각, 계승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자고 주장하였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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