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44] 鍼灸擇日編集
상태바
[고의서산책144] 鍼灸擇日編集
  • 승인 2003.04.19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뒤바뀐 조선의학의 運命

그림설명-상해에서 중각된 『침구택일편집』

지난번 北京 방문에서 우연찮게 상봉한 우리 옛 의학서이다. 조선 전기에 저술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여러 차례 출판되었으나 국내에는 남아있는 판본이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측 자료에는 명대의 의서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 이래저래 우리에겐 아픔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저작은 內醫院 醫官으로 護軍인 全循義와 司直 金義孫의 共編으로 되어있다. 전순의는 盧重禮와 함께 첫 손꼽히는 명의였으며, 나이가 들어 노쇠하자 궁중의 의학교육을 염려할 정도로 몇 안 되는 실력자였다. 또 『의방유취』의 편찬에 참여했고 食治法를 다룬 『食療纂要』와 『山家要錄』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어찌된 일인지 明나라 醫官으로 둔갑되어 있고 아예 이름이 바뀌어 金循義로 표기된 곳도 흔하다.

통탄할 일이지만 이 책이 그나마 오늘날 살아남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조선의 古本이 일본 의학명문가인 多紀집안에 들어가 전해지다가 중국인 학자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졌다. 이것을 羅嘉杰이 1890년(光緖16) 상해에서 복각한 것이 현존본이다. 본문에는 군데군데 多紀氏藏書印과 上원羅氏書畵金石印이 위 아래로 찍혀 있어 중국과 일본을 轉傳한 이 책의 이력을 말해 주고 있다.

다행히도 첫 머리에 集賢殿 副校理이자 世子左司經의 직책에 있던 金禮蒙이 正統12년(세종29, 1447)에 작성한 序文이 남아 있어 편찬 경위를 설명해 주고 있다. 또 글 가운데 “得時鍼之, 必除其病, 失時刺之, 難愈其病.”라고 하여 鍼灸에 있어서 擇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羅嘉杰은 중간서에서 원본이 日本侍醫敎諭인 多紀元堅의 소장본으로 보통 것과 달리 무척 귀중한 책임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문중에는 저자를 明醫院官이라고 밝히고 있어 여기서부터 오해가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저자 이름의 全자를 흘려 써놓은 탓에 金으로 혼동하기 쉽게 보인다.

1권1책의 목판본으로 꾸며진 이 책은 서문 2장, 본문 27매의 다소 적은 분량 탓인지 影宋本『備急灸法』과 함께 『重刻鍼灸擇日編集』이라는 제호로 復刊되었다. 조선 원본의 전래 경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 왜구가 약탈한 의학문화재가 다량 수장되어 있던 養安院의 藏書目錄에 ‘鍼灸擇日 二本’이라 실려 있다. 이 기록은 간본과 사본 2종류로 짐작되며, 이 중 초본이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앞서 실려 있는 인용서적으로 千金方, 黃帝明堂灸經, 補註銅人수穴鍼灸圖經, 竇漢卿編集鍼灸指南, 鍼灸廣愛書括, 事林廣記, 齊人千金月令, 元龜集, 龍木總論, 易簡方, 龍樹菩薩眼論 등이 올라있다. 이중 明堂灸經이나 鍼灸廣愛書括, 龍樹菩薩眼論과 같은 책은 『의방유취』에만 보이는 서명으로 저술시기가 매우 가까움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서문에 밝힌 시기는 『의방유취』가 완성된 지 불과 2년 후이다.

특히 본문은 서술된 문장이 아니고 각 조문의 작은 항목마다 약호로 출전이 밝혀져 있어 세밀하게 인용서를 대조 분류한 형태를 띄고 있다. 예를 들면 ‘鍼灸吉日 出銅人 元龜 廣記’라 밝혀 놓았고 인용서마다 서로 차이가 있는 점을 ‘諸方無此法’ 등으로 표기해 놓았다. 당시 얼마나 문헌의 고증과 내용의 교감에 열심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본문을 모두 소개하기는 곤란하나 몇몇 소제목의 목차를 들어 다소나마 그 내용을 짐작해 보기로 하자. 먼저 鍼灸吉日에 이어 推天醫吉日及雜忌傍通法, 忌鍼灸法, 推四時人神忌, …… 醫眼禁忌日, 雜忌法, 候天色法, 灸膏황忌法, 灸艾雜說法, 點艾花法, 莊季裕灸膏황忌法 등이 실려 있다.

맨 마지막에는 이 책을 교정하고 淨寫한 于(希璟)小宋의 발문이 적혀 있지만 이미 중국에서 잃어버린 명대의 의서를 되찾았다는 기쁨을 피력했을 뿐이다. 그러나 원문 중에 闕文이라 표시한 곳도 더러 눈에 띄고 羅氏의 말에 古本이 이미 연기에 그을리고 蟲蝕이 심하여 글자를 읽기 어려운 곳이 있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정 부분 훼손되었거나 착오가 섞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원저작이 고향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異域에서 고생하다가 만리타향에서 중국 책으로 뒤바뀌게 되는 비운을 겪은 셈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