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34] 濟衆立方
상태바
[고의서산책134] 濟衆立方
  • 승인 2003.04.19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재상의 風을 다스린 솔잎찜질

그림설명-향약집성방 인용문과 의림촬요의 교효산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조 의서의 이름 중에선 가장 오래된 것으로 대략 1170년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여겨진다. 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망실되었고, 오늘날 『鄕藥集成方』 風門(권3) 안에 단 1조문만이 살아남아 전해지는 것 이외에는 전혀 찾아볼 길이 없다.

저자는 金永錫(1079~1166)으로 지금의 江陵 지역에 해당하는 溟州의 豪族이었던 金周元의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門下侍中을 지낸 仁存으로 고려 중기 세 임금을 모시고 顯職을 역임하면서 대외문서와 詔誥가 주로 그의 손에서 나왔다. 뿐만 아니라 崔璿, 李載 등과 더불어 음양지리서인 『海東秘錄』을 지었고 박승중과 함께 『時政策要』 썼으며, 당 태종의 치세비결인 『貞觀政要』에 주석을 붙였다. 이러한 집안의 문풍을 이어받았는지 영석과 형제인 영윤, 영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김영석은 처음에 조부의 蔭仕로 官界에 진출하여 술과 감주의 관리를 담당했던 관서인 良丞同正을 지내다가 후에 登第하여 벼슬이 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여러 벼슬을 지내며 관로가 훤히 트였던 그는 65세에 風을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관직을 사임하고 은퇴하여 13년간 오로지 靜養에만 진력을 다한다. 따라서 이 무렵 자신의 身病을 치료하기 위해 와병 중에 이 책을 집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김영석의 손자인 金弁 역시 兵部尙書를 지낸 인물로 저자미상의 『備豫百要方』 안에 경험방을 남겨 대대로 의약에 밝은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사실이 사상최초로 『의방유취』 안에서 崔宗峻의 『어의촬요』 외의 또 하나의 고려 의서를 찾아내어 규명하는 단서를 제공하였다. 아울러 위의 사실을 통해서 고려 전기 의사의 사회적 신분이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으며 호정 이상의 양반관료의 자제들만이 의과에 응시할 수 있어서 조선의 양반들이 의학을 천시하고 의원들이 중인계층으로 전락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태까지 ‘제중입효방’은 『향약집성방』에만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 『醫林撮要』 안에도 실려 있음이 확인되었다. 楊禮壽는 첫 권의 中風門에 ‘交效散’이란 처방을 수록했는데, 그 내용은 『향약집성방』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조선 중엽 이미 원서가 망실되어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출전이 ‘濟衆方’으로 되어 있고 원래 없던 처방명을 새로 붙여 놓았다. 처방의 내용은 솔잎과 소금을 5:2로 섞어 주머니 속에 넣은 다음 뜨겁게 가열하여 찜질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汗蒸幕의 솔잎찜질법과는 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는 김영석의 墓地銘을 보면 “……일찍이 宋과 新羅의 醫書를 열람하고 손수 奇妙하고 要緊한 것과 여러 사람이 쓰기에 편리한 것을 가려 뽑아 이 책을 지었다”고 쓰여 있다. 그것은 곧 단지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경험처방을 적은 것이 아니라 중국과 신라의 역대 명저, 명방을 두루 섭렵하여 쓸만한 것만을 골라 발췌 選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중국의 의서를 참고한 것을 두고서 한때 “고려의학은 唐宋의 術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평이 있었지만 연구결과 전혀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다행히도 앞서 말한 솔잎 찜질 처방은 중국 의방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치법으로 삼국시대 이래 전해 내려온 한반도의 전래비법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新羅法師方, 百濟新集方, 高麗老師方 등과 함께 삼국시대 전통의약을 입증해 주는 소중한 전승경험방이라 할 수 있다. 金·元의 침략과 고려 중기 이후 혼란한 정세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수많은 고려 의서 중에서 그래도 요행히 처방 한 조문이 『향약집성방』에 채록되고 저자의 묘지명에 이 책의 저작사실이 전해지는 것만도 천만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