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33] 藥成方
상태바
[고의서산책133] 藥成方
  • 승인 2003.04.19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民草들이 애용한 鄕藥本草方

그림설명-필사본 약성방과 연활자본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은 『동의보감』과 함께 조선 백성들에게 가장 널리 읽힌 의방서로 1433년(세종15)에 처음 간행된 이후 세조, 성종, 인조 등 역대 여러 임금의 재위 중에 중간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조 이후에는 점차 희소해져 李圭景 같이 박람한 학자조차도 『五洲衍文長箋散稿』의 ‘新增鄕藥集成方辨證說’에서 “내의원이나 각처의 史庫에 간직되어 있을 듯한데 보이지 않고 팔도에 두루 탐문했으나 이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막바지인 1942년 杏林書院에서 朝鮮秘藏古版醫書叢刊의 첫 작품으로 신식활자로 조판하여 발행한 것이다.

이 연활자본이 나올 때만해도 이미 이 책이 아주 희소해져 경성제대 일인교수의 소장본과 의사학자 三木榮의 필사본 30책, 그리고 心農 洪宅柱의 殘本을 취합하여 완질을 갖추었다고 밝히고 세 사람의 공로를 칭송하여 7층 浮圖塔을 쌓은 공덕에 뒤지지 않는다고 감사를 표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필사본은 바로 이 『鄕藥集成方』의 권14 諸虛門의 治法과 처방을 選錄하여 한 권의 책으로 꾸민 拔萃本이다.

문고판보다 약간 큰 아담한 사이즈의 책표지 겉면에는 정식 서명을 줄여 ‘藥成方(單)’이라 하였고 의도적으로 이 부분만 채록하여 별책으로 꾸몄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서명 아래엔 ‘英陽南宗漢元彦書’라고 필사자의 성명을 밝히고 있다. 경북 영양군은 남씨가 土姓으로 경상도 동북부 산골에 위치한 어느 民家에서 一家親族에게 쓸 요량으로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病門은 제쳐 두고 虛損에 대한 약방문과 食治, 약죽, 약술 등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전문으로 의업을 펼친 이가 아니었을 것이며, 집안에서 손쉽게 쓸 家用方을 정리해두려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초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향약집성방』이 조선에서 왜, 얼마나 널리 쓰였는지 속 시원하게 설명한 구절은 많지 않다.

최근 젊은 의학사 연구자가 이 책의 뒤편에 실린 향약재 703종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의외의 중요한 사실을 알아내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여러 가지 조사결과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에서 아직 감초가 재배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약방의 감초라는 옛말이 걸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값비싼 唐材의 수입을 억제하고 自國産出 약재의 약효를 考定하는 일은 조선 개국 초부터 역점을 두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10권(권76~85) 분량의 향약본초에 실린 623종의 약재와 당시 國際標準藥典이라 할 『證類本草』 수록 약재를 비교한 결과, 甘草, 麻黃, 桂, 附子, 黃連 등 상용약재를 비롯하여 약800종 가량을 수록하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본문의 처방 중에서도 감초를 비롯한 이들 수입 약재가 들어있는 처방이 극소수이거나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저 막연히 경험처방을 수록했다거나 중국 책을 표절하여 짜깁기한 것으로 여겼던 향약의방서가 철저한 고증 과정을 거쳐 선정한 국산약재를 중심으로 처방한 방제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뒤늦게 우리 것에 무관심했던 우리를 아연 숙연케 한다.

삼국시대로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의 의약경험을 모아 집대성했다는『향약집성방]은 방대한 수록내용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스며든 경험과 지혜의 산물임에 주목해야 한다.

조선 중기 『의림촬요』의 俗方, 『동의보감』 탕액편과 단방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의 경험단방과 최근세 金海秀의 『萬病萬藥』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전승 경험방의 대부분은 바로 이 역사적인 지혜와 의약경험의 보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이 책의 고판본 완질 하나 갖추지 못하고 제대로 된 연구서 한 종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넘어 이 시대 또 하나의 아픔이라 할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