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30] 纂圖脈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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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30] 纂圖脈訣
  • 승인 2003.04.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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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와 성경

그림설명-『삼인방』 맥경서(左)와 『찬도방론맥결집성』 발문

필자는 이미 오래 전에 ‘許浚의 처녀작’(23회/2000.2.7일자)이라는 제목으로 『纂圖方論脈訣集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비슷한 이름이 붙은 이 책은 허준이 1581년에 펴낸 『맥결집성』의 저본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헌에 따라 ‘찬도맥’ 혹은 그냥 ‘맥결’로 약칭되기도 한다. 이 책은 대략 늦어도 고려말~조선 초기에는 조선에 유입되어 수백 년간 醫科考講書로 쓰여진 비중 있는 진단학 교과서였다.

원작은 六朝時代(대략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해당)에 高陽生이 王叔和의 脈經을 7言의 歌訣로 지은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역대 학자들로부터 두고두고 시비 거리가 되어 왔다. 논란의 발단은 陳言이 『三因極一病證方論』(1174)의 첫 머리에 ‘脈經序’를 실으면서 표절시비를 제기한데서부터 비롯된다.

즉, 그는 “脈爲醫門之先,……六朝有高陽生者, 剽竊作歌訣, 劉元賓, 從而解之……”라 하여 『脈訣』에 대한 원초적인 불만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당시 이미 脈經의 정확한 텍스트가 부재했으며, 『三因方』에서조차 七表, 八裏, 九道脈을 수록하는 등 외우기 쉽고 사용하기 간편한 통속 맥결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적어도 宋의 陳無擇 이후 이 책에 대한 실용성과 대중적인 호응이 500년 가까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황은 조선도 마찬가지로 『의방유취』에 이미 ‘찬도맥’을 비롯하여 다수의 맥결류 서적이 引用諸書에 등재되어 있다. 특히 ‘찬도맥’은 세종12년에 처음 의과고시 과목으로 등장한 이래 고종2년까지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효소왕 원년(692)에 중국에서 건너온 의학박사가 『맥경』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시대에도 의학교육에 이용되었다.

16세기 후반 脈訣에 대한 진위논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바로 李時珍이다. 『瀕湖脈學』의 부록으로 붙어 있는 ‘脈訣攷證’에서 그는 여러 諸家說을 들어 인용하면서 맥결이 언제 출현했는지를 변증하였다. 여기서 그는 정확한 연대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宋 喜寧(1068~1077)初에 『脈經』을 校正할 때는 맥결이 보이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이 시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당시 의가들의 입장은 ‘맥결이 나오자 맥경이 숨어버렸다’는 말로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오히려 『맥경』이 분명치 않아 조잡한 가결의 독송이 성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논란을 再燃시킨 것은 淸의 李延昰이다. 「脈訣彙辨」 첫 머리에 실린 ‘高陽生考’에서 그는 수백 년간 지속되어온 시비를 매듭짓고자 하였다. 그는 결국 高陽生이 北宋 이후 사람이라고 인물에 초점을 두어 단언하였다. 하지만 어쨌건 註釋家인 劉元賓(通眞子)이나 陳言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므로 대략 맥결의 등장시기는 11C 후반~12C 전반으로 좁혀진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이루어진『찬도방론맥결집성』의 편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허준은 이 논쟁에 직접 뛰어들진 않지만 발문에서 자신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陳言이 제기한 僞作說에 동조하면서도 맥결을 교정하고 여러 注釋家의 註解를 모아 평가함으로써 현실적인 수용단계를 밟고 있다. 그는 또 조선 초의 의술수준이 거칠고 소략하여 脈經全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지만 중국이나 조선 모두 맥법의 혼란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비유가 어울리는지 모르겠으나 신학자의 관심은 성경의 구절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때로 대다수의 신도들에겐 딱딱한 經文보다는 목청껏 부를 수 있는 찬송가 가락이 필요하다. 허준은 경문을 중시함과 아울러 가결의 필요성도 잘 깨닫고 있었으며 두 가지 모두를 한곳에 구현하여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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